[길섶에서] 주 판/심재억 문화부 차장
수정 2005-07-28 00:00
입력 2005-07-28 00:00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다섯개이던 알이 네개로 준 데 있었다. 아버지는 “손에 익으면 그게 훨씬 낫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머리는 다섯알 셈으로 돌아가는데 손은 네알 셈을 해야 되니 나중에는 자꾸 꼬여 엉망이 되곤 했다. 담뱃갑 속지에 빼곡하게 적힌 아버지의 주판시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배알이 탱탱하게 긴장하며 이마에 진득 진땀이 뱄다.
겨우 시간을 채웠는데 앞쪽의 쉬운 두어 문제 말고는 모두 ‘꽝’이었다. 도리없이 아버지 훈시를 들어야 했다.“이런 식충이 겉은 눔, 그래서야 밥이나 얻어먹고 살겠느냐?” 그 후 나는 주판만 보면 얹힌 것처럼 뒷덜미가 뻐근하게 오그라들곤 했는데,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나는 지금도 셈하고, 돈 버는 일에는 젬병이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7-28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