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누드」는 예술작품의 재료
수정 2005-07-05 14:02
입력 2005-07-05 00:00
벗기를 즐기는「해프닝」여신의 말씀은
『왜 벗었다는데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어요.「누드」자체가 하나의「오브제」(물체)로 쓰여지고 있을 뿐인데…』라면서 속안(俗眼)을 탓한다.
올해 26세. 대구산(産), 조숙하여 일찍이 여고시절부터「괴물」이란 칭호를 얻었다. 대구 효성여대 원예과를 1년쯤 다니다가『암만해도 그림 그리고 싶어 미칠 것 같아서』단신 가출- 홍대 서양화과로 적을 옮긴 것이「괴물회화-해프닝」에 발을 담그게까지 발전했다.
현재는 마포「아파트」근처 조촐한 2층을 전세 내어「미술연구소」를 개설,「먹는 일」과「자는 일」과「그리는 일」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이상이「괴물」정강자양의 신상조서 전부. 『「해프닝」이란 말하자면 표현방식과 재료의 해방이랄 수 있어요. 그러니까「누드」도 재료해방의 한 부산물일 뿐예요』라는 정양은,
『언제든지 내「누드」가 예술작품의 한 재료로 쓰여진다면 기꺼이 벗겠다』는 것.
유명해진 건 지난 봄「99%라(裸)」부터, 친오빠인 가수 남일해(南一海)는 이해깊어
정양의 이「파격적인 용기」는 67년 12월 가두「데모」까지 벌이고 연 청년작가연입전(聯立展)에 작품『「키스」해줘요』를 출품하면서 본격화했다.「포프」「오프」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클로즈업」된 여인의 반쯤 버린 입속에 이빨 대신 색채간막이와「선·글라스」눈동자 등을 그려 넣은 것.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양을 유명하게 한 건 지난 5일「세시봉」에서 열린『투명풍선과 누드』에서「99%라(裸)」가 되면서부터이다.
『부끄럽지 않았다 하면 좀 여자답지 못하고 부끄러웠다면 예술이 망쳐지고…』하면서 정양은 애교 정도의 부끄러움 뿐이었음을 고백한다.「예술을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는」순교자적 용기가 정양의 가난한 재산목록 중 가장 으뜸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한때는 신촌 부근에서 지하실을 빌어 꼭 석 달 동안「지하여장군」생활도-.「괴짜」취미 때문이냐고 물으니까 그게 아니라「돈이 없어서」란다.
현재의「그럴듯한」「아틀리에」를 갖게 된 데는 바로 웃오빠가 되는 가수 남일해씨의 물질적 정신적 도움이 컸다고. 4남 1녀 중 넷째가 되는 정양은 자신의 말을 빌면「정신적인 고아」인데 그래도 가장 자기를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오빠가 남일해씨라는 것.(그러니까 남일해씨의 이름은 예명. 본성은 정(鄭)씨이다.)
그래서 남일해씨가 준 10만원 중 5만원 보증금에 8천원의 월세로 마포에「아틀리에」를 마련, 10명의 국·중·고생들에게 미술지도, 월수 1만 5천원 ~ 2만원을 얻고 있다. 남은 돈 5만원으로는 작품 2점을 완성하고.
“평생 결혼은 안 하겠다” 하루 담배 1갑의 골초
『오빠한텐 전세 10만원이라고 하고 받아냈는데 그 얘기 쓰면 큰일 나요』하는 정양은 별로 큰일 날 것 같지도 않은 표정이다. 가지고 있는 옷은 10여 점 뿐.『옷 살 돈 있으면 작품 하나 더 하겠다』는 정양은「슬랙스」를 무척 즐겨입고 머리엔「스카프」를 잘 쓴다.「시몬느·시뇨레」「아구크·에메」「마리네·디트리히」등이 좋다는 정양은「프랑스」영화「팬」이기도 하다.
애인은 없지만 남자친구는 많다는 정양은『일생 결혼은 안 할 생각』이며 하루 담배 1갑을 피우는 골초. 술은 많이 못하지만「마신다는 분위기가 좋아서」명동의「은성」엘 1주일이면 두어 번 들르는 정도이고 가장 좋아하는「슬로·진」은 상대가 남성이고 얘기가 통하며 멋이 있으면 밤이 새도록 마셔 줄 용의가 있노란다.
[ 선데이서울 68년 11/17 제1권 제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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