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뮤지컬 ‘밑바닥에서’
이순녀 기자
수정 2005-07-05 07:33
입력 2005-07-05 00:00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소설 ‘어머니’로 유명한 러시아 작가 막심 고리키의 동명 희곡을 각색한 작품.19세기 말 러시아 빈민 계급의 밑바닥 인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희곡은 1920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처음 선보였고,1936년 장 가뱅 주연의 프랑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지난 98년, 랩뮤지컬을 표방한 ‘서푼짜리 오페라’로 신선한 인상을 남겼던 연출가 왕용범과 작곡가 박용전이 의기투합해 만든 ‘밑바닥에서’는 기존 뮤지컬 문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함이 돋보인다. 또한 원작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면서 희극과 비극의 절묘한 강약으로 메시지의 강렬함을 유지하는 균형감각도 빛난다.
무대는 허름한 선술집. 이곳은 희망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인생 패배자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몰락한 귀족, 사기도박꾼, 매춘부, 알코올중독자 무명배우, 불치병에 걸린 소녀…. 매일 밤 이곳은 이들이 서로 싸우는 전쟁터가 되기도 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낭만적인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지하실을 배경으로 19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원작의 방대한 내용을 효율적으로 압축한 연출가의 각색 솜씨가 깔끔하다.
강렬한 비트의 전자음 대신 어쿠스틱 반주를 주조로 한 음악은 이 작품의 정서를 무엇보다 잘 드러낸다. 극의 후반부, 내내 침묵하던 무명배우가 탁자 위에 올라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노래와 극의 유기적인 결합은 다소 떨어지는 듯해 아쉽다.
역량있는 뮤지컬 연출가와 작곡가의 발견 못지않게 재능있는 신인 배우들을 만나는 기쁨도 크다.‘지하철1호선’에 출연했던 이주원과 황지영을 포함해 페페르역의 황태광, 바실리사역의 김희원,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무명배우역의 이승현 등의 열연이 인상적이다. 연장공연에서도 초연멤버들이 그대로 참여한다.8월21일까지.(02)745-212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7-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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