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모성애/심재억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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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6-25 00:00
입력 2005-06-25 00:00
달걀을 품어 까고, 그 병아리들 먹이느라 수척해진 암탉이 마당 가운데서 저보다는 서너 배나 큰 개와 맞섭니다. 갈기털을 잔뜩 부풀리고 눈을 부라리며 맞서는 게 여간 사나워 보이지 않습니다. 개는 장난스럽게 앞발을 툭툭 내지르거나 엎드려 으르렁거리는 시늉도 해보지만 암탉은 꿈쩍도 않습니다. 슬슬 곁눈질하는 게 아무래도 잘못 건드렸다 싶은 모양입니다.

닭이 개의 상대는 못 되지만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은 다릅니다. 개가 아무리 사납게 다그쳐도 암탉은 병아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홀몸 같으면 벌써 지붕이나 닭장 횃대 위로 꽁무니를 뺐을 닭이 물러서지 않고 대거리를 합니다. 그 암탉이 사나운 개와 맞서는 힘은 오로지 모성애입니다.

이 광경을 본 어머니,“이런 못된 것이 새끼 키우는 암탉을 성가시게 한다.”며 발을 구르는 시늉을 하자 그제서야 마지못한 듯 꼬리를 감춥니다. 개 체면 말이 아닙니다. 햇빛 밝은 마당에 다시 평화가 오고, 암탉은 부지런히 풀섶을 헤집어 먹이를 찾습니다.

그런 따뜻함으로 힘겨운 세상을 헤쳐왔는데, 살기 좋다는 요새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많아 무섭고 슬픕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6-2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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