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여담] 방북…그때 그 사건/ 주현진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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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5-07 10:58
입력 2005-05-07 00:00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그러나 기자에게는 아직도 오싹한 기억이 하나 있다.

1995년 봄. 화교 출신으로 대학 2학년 이었던 기자는 한 방송사 보도국 간부로부터 방북 제안을 받았다. 그는 당시 기자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던 만큼 방송에 관심이 있을 것으로 보고 방북 프로젝트 참여를 권했다.

“촬영 편집 등 방송의 이론과 실제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기자를 설득했다. 그와 만나기 전 언론사 대표번호로 통화가 연결됐고 만남도 방송사 사무실 안에서 이뤄져 나름의 신빙성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당시 기자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단 한 가지.‘아무리 방송사가 하는 일이라도 북에 가는 게 과연 안전할 수 있을까?’라는 점이다. 그 간부도 이 대목은 계속 피해 가더니 결국 “안전? 그건 보장 안 되지….”란 말로 기자의 힘을 뺐다.

그는 자신의 지인을 통해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화교 출신을 물색했다. 화교의 국적은 중화민국(타이완)이라 방북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귀화 전 학생 신분이던 당시 기자의 요건이 딱 알맞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지원자를 찾지 못했는지 그 프로젝트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TV에 나오는 것을 그후 본 적이 없다. 외국인이라도 북에 가기는 쉽지 않던 시절이다. 그런 흉흉한 세월에 몰카를 들고가 닥치는 대로 찍어 오라니…. 일고의 가치도 없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이달 말 기자는 개성공단 취재를 위해 북한에 간다. 최근 이를 위해 신원진술서를 작성한 기자의 감회는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당시 북에 가면 죽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한 세월 동안 남북간에도 실로 큰 변화가 있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1998년)과 함께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5월 현재 관광객이 95만명에 이르고 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도 열 차례나 열렸으며, 남북 농업협력사업 등 다양한 계층에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도 사고 없이 진전돼 남북문제에 또 다른 전기를 가져다 주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2005-05-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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