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시인에게 詩를 묻다
수정 2005-05-06 07:41
입력 2005-05-06 00:00
“어떤 날인가, 터덜터덜 완행버스를 타고 오지를 지나는데 외딴집 흙벽에 지난겨울 시래기가 대롱거리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니까(제가 원래 시래기를 무척 좋아합니다)갑자기 내가 이제껏 해온 짓들이 누추하기 짝이 없더라고요. 이렇게 살다가는 ‘따뜻한 시래기죽 한 그릇’도 못 되겠더라고요.”
시인이 지난해 작고하기 전 병상에서 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저자는 “죄송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봄이 오고 있는데, 시는 과연 무엇인가. 시는 어디 있는가. 너는 과연 대상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고 있는가.”라고 자문한다.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선운사에서’중). 최영미 시인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를 읽을 때 관심두는 부분을 물었다.“남의 시를 읽으며 저는 늘 ‘이 사람이 왜 시인이 됐을까.’‘이 시를 왜 썼을까.’ 은밀한 궁금증이 피어오릅니다.” 저자는 “이 짧은 시 한 편 무심히 읽는 순간, 그러나 그 시의 주인공, 꽃은 이 세계의 투명한 뼈대가 된다.”는 감상문을 덧붙였다.
시인들의 독특한 창작습관과 시인론, 시에 얽힌 일화를 엿듣는 재미도 크다.
이해인 수녀는 “(떠오른 시상을)잊을 우려가 있을 적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날더러 잊지 말고 이런 것을 쓰라고 하세요.’라고 부탁해 둔다.”고 밝혔다.
천양희 시인은 “시를 쓸 때 먼저 손을 씻고 교자상 앞에 앉아 볼펜으로 원고지에 쓴다.”고 했고, 정일근 시인은 “시는 꿈속에서 많이 찾아온다. 그러면 일어나서 메모를 해놓고 잔다.”고 전했다.
황지우 시인은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로 시작하는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과 관련,“지명수배 중이던 시절 하이틴 잡지에 근무하는 선배의 부탁으로 5분 만에 쓰윽 긁어서 쓴 시”라고 회고했다.85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5-06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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