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벤 치/우득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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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4-30 00:00
입력 2005-04-30 00:00
출근길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은 노부부가 눈길을 끈다. 계절의 변화에는 무심한 듯한 겨울 점퍼 차림의 할아버지와 두꺼운 스웨터 차림의 할머니는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종종걸음을 내닿는 젊은이들과 달리 멀뚱히 앞만 바라본다. 어디를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그리워 나온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산책길에 피로해진 다리를 쉬려는 것일까.

어느 작가는 인생을 벤치에 비유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의 각 단계를 옮겨가는 과정이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것과 유사하다는 뜻이리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오르는 학생은 청년기에 이르는 벤치에, 양복 차림의 회사원은 장년을 향한 벤치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아저씨는 노년기에 다다르는 벤치에 걸터앉아 있다.

그럼에도 벤치가 아닌 길거리를 내달리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어쩌면 하염없이 앉아 있는 저 노부부만이 인생과 벤치의 함수관계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의 마지막과 지금의 사이에 놓여 있는 벤치의 의미를.

이번 주말에는 머릿속이 뽀얗게 빌 때까지 벤치에 마냥 앉아 있고 싶다. 그리고 가슴에 얼기설기 얽힌 거미줄도 한올한올 걷어내고 싶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5-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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