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플레이볼] ‘월드’ 야구대회
수정 2005-03-30 07:27
입력 2005-03-30 00:00
양 리그간의 포스트시즌 경기에 월드란 단어가 들어간 기원중 한 가지는 최초의 월드시리즈 스폰서를 뉴욕의 잡지인 ‘월드’가 섰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그러나 월드시리즈가 시작된 1903년부터 3년간 이 잡지에는 그런 사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월드가 들어간 기록은 1887년 발간된 야구 잡지 ‘스폴딩 야구가이드’에 나온다.
1886년 내셔널리그 우승팀 시카고와 당시 또 다른 메이저리그였던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우승팀 세인트루이스간에 열린 경기를 ‘월드 챔피언십’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 잡지는 1890년판에 포스트시즌 경기는 ‘미국 챔피언십’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지만 장래 다른 국가도 참가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명칭을 붙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월드시리즈는 호주가 참가하고, 다음으로 영국이 참여할 때 이루어진다고 했다. 스폴딩 가이드가 이렇게 야구의 세계화에 앞장선 이유는 잡지 발행인이자 야구용품으로 재벌이 된 알렉산더 스폴딩이 세계화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스폴딩은 1888년 자신이 구단주인 시카고 화이트 스타킹스를 이끌고 세계를 순회하는 시범경기를 가졌다. 그러나 진정한 ‘월드’ 야구대회는 그후 100년의 세월이 지난 내년에 성사될 예정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메이저리그가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메이저리그도 노사분쟁 등으로 떨어진 인기를 국제화를 통해 되살려야 할 필요를 느껴 성사될 수 있었다.
최근 오는 11월 일본에서 아시아 4개국의 우승팀이 참가하는 아시안컵이 열린다는 발표가 있었다. 아시아 국가간의 야구 경기는 이미 10년 전에 추진됐었다. 야구를 국기로 하는 타이완이 프로야구 출범을 계기로 아시아프로야구연맹 창설을 제창하고 나섰으나 리그 명칭에 ‘차이니스’라는 용어가 들어가기 때문에 곤란하다며 일본이 반대한 탓에 흐지부지됐다. 한마디로 일본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꼬투리를 잡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도 이제는 스타의 미국 진출로 인기에 위협을 느끼자 아시안컵 창설에 적극 나섰다. 야구 국제대회는 모두 강대국의 필요성에 따라 이뤄진 것이기는 하지만, 국제화를 통해 각국의 떨어진 인기를 회복하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2005-03-30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