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작가 35인 ‘속얘기’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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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3-18 07:58
입력 2005-03-18 00:00
열에 아홉, 내면을 글로 꿰는 책상물림의 작가들에게는 기벽(奇癖)이나 범상찮은 기억들이 훈장처럼 따라붙어 다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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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타계한 김춘수 시인은 벽에 못 하나를 박을 줄 몰랐으니 생활인으로서는 완전 젬병이었다. 어느덧 칠순이 된 신경림 시인은 저 유명한 시집 ‘농무’를 쓸 수밖에 없었겠다. 나이 서른에 시작한 낯선 서울살이, 전기도 수도도 번지수도 없는 문화촌 산동네에는 돈벌이를 찾아 고향을 등져온 농민들로 그득그득했었다.

故김춘수시인 “김수영 의식하다 순수시 고집”

‘내 문학의 뿌리’(답게 펴냄)에서 한국문단을 이끌어온 대표작가 35인이 목청을 돋운다. 나는 어쩌다 작가로 살게 되었으며, 내 문학의 뿌릿발은 정녕 무엇으로 인하여 그토록 오래 성성할 수 있었는지! 책은 2001년 문을 연 ‘문학의 집·서울’(이사장 김후란)이 2년여 동안 마련한 원로문인 초청강의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첫 장은 소설가 구혜영의 유년시절로부터 열린다. 강원도 평창·횡성 등 시골에서의 유년을 복기하는 문투는 마치 성장소설처럼 재미나다 싶은데, 어느새 작가적 소양을 배태하게 해준 은인 같은 존재가 기억의 중심에 선다.‘그’라고 의인화된 글 속의 대상은 결국 ‘쓰기 욕구’였던 것. 사내아이처럼 바깥을 떠돈 어린시절을 지탱해준 것도, 재수 끝에 대학시험에 붙게 해준 것도 모두 남다른 작가적 욕망이었다고 술회한다.

이렇듯 쓰기에의 극찬사로 시작된 책은, 시인 김춘수·김종길·김지하·신경림, 문학평론가 이어령·유종호, 소설가 박완서·송원희·이청준·이호철·한승원, 수필가 피천득·김태길 등 35명의 문학인들 사이를 종횡무진 활강한다.

시인 김춘수는 자신이 ‘무의미의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옹색한 배경을 솔직히 말했다.“평생동안 유일하게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시인은 김수영”이라고 밝히고 “그와 다른 길을 모색하다 보니 의도적, 의식적으로 순수시를 고집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한달에 한 두편 시를 쓰는 게 일과의 전부”라거나 “은행에 가서 돈 찾고 넣고 할 줄도 모른다.”는 등 짧은 문장들 속에서 시로만 향했던 시인의 천착이 느껴진다.

작품론을 벗어나 작가들의 사변적인 사연을 엿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가 박범신은 삶이 팍팍할 때면 훌훌 털고 용인으로 간다.“고요하면서 쓸쓸하고 쓸쓸하면서도 꽉 차 있는, 적멸보궁 같은 그곳 굴암산으로 홀로 걸어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사는 게 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고 생활의 한 방편을 귀띔한다.

3년 쓰고 남을 원고지 싸들고 美유학하기도

혹독하고 치열했던 습작의 기억을 재구성한 글들은 문학론의 한 장이 될 만하다. 휴전 직후 학원 영어강사 시절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는 수필가 김태길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3년 동안 쓰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원고지를 싸갖고 떠난 일화를 소개했다. 최근 글쓰기 세태를 맵짜게 꼬집고 한편으론 후배 작가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주례사 수준의 평필(評筆)들이 옥석을 가려주지 못하고 수필의 양적 팽창만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박완서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

소설가 박완서의 말은 속 깊은 자기고백에 다름없다.“한겹 두겹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그는 맨 마지막줄에 “가벼워지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담담히 적었다.

이젠 고인이 된 이들의 육성도 더러 끼어 있다. 시인 조병화, 극작가 이근삼, 아동문학가 어효선 등의 글에 이르면 사뭇 숙연한 지상강의가 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5-03-18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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