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100주년 사업단 박현식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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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03-14 07:41
입력 2005-03-14 00:00
1905년 미국인 선교사 필립 질레트가 ‘황성 YMCA야구단’을 창단하며 이 땅에 야구가 뿌리내린 지 꼭 100년. 한국야구의 ‘원조 홈런왕’ 박현식(76)씨는 요즘 무척 바쁘다.‘야구 100주년 기념사업단’의 위원으로 위촉돼 지난 100년간 흩어진 야구 숨결을 한 곳에 담기 위한 방대한 작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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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식 야구 100주년 기념사업단 위원이 동…
박현식 야구 100주년 기념사업단 위원이 동… 박현식 야구 100주년 기념사업단 위원이 동대문야구장을 찾아 한국 야구의 새로운 지평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막상 자료 수집에 나서니 빛바랜 사진들만 덩그러니 있을 뿐 역사의 숨결을 함께 한 스타들에 관한 자료도, 전시할 야구 관련 용품도 빈약하기 짝이 없어요.” 그래도 타고난 ‘강골’에 술·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덕인지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애마’인 스포츠레저 차량을 끌고 전국을 주유한다. 그는 1950년대 초부터 1974년 은퇴할 때까지 ‘한국의 베이브 루스’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공식 기록이 부실해 정확한 개수는 알 수 없지만 프로 출범 이전까지 개인 통산 100홈런을 넘긴 최초의 슬러거임에 틀림없다.

현역시절 병원에서 출퇴근하며 홈런포를 가동한 것은 유명한 일화.62년 농업은행(현 농협)의 4번타자로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박 위원은 실업연맹전 첫날 철도청 전에서 상대의 악의적인 투구에 얼굴을 맞아 기절했다. 이튿날은 ‘숙적’ 한국전력과의 경기. 병상에 누워 있던 그에게 문 틈으로 라디오 중계가 흘러나왔고,5회까지 농업은행이 3-4로 끌려가고 있었다.

“차마 누워 있을 수 없었지. 병상을 박차고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야구장)으로 달려갔어. 경황이 없어 환자복을 언더셔츠처럼 받쳐 입고 유니폼을 덧입은 채 덕아웃에 나타나자 동료들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 9회초 2아웃에 타석에 들어선 그는 힘차게 배트를 돌렸고 공은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5-4 역전승. 다음날에도 경기 중간에 불쑥 나타나는 ‘환자복 선수’의 활약은 계속됐고, 농업은행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로야구 출범 때도 그에게 역할이 주어졌다. 인천 연고팀을 준비하던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이 ‘왕년의 슈퍼스타’를 영입,‘예고된 꼴찌팀’의 지휘봉을 맡긴 것. 하지만 ‘성적에 연연하지 말고 인천야구의 토대를 닦아달라.’는 구단주의 약속과는 달리 13경기(3승10패) 만에 해고돼 역대 최단명 감독이 됐다.83년 9월 한번 더 삼미의 감독대행을 맡았지만 8승1무11패의 기록을 남긴 채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병풍(兵風)’으로 뒤숭숭했던 지난해 프로야구판을 떠올리자 “중·고교는 물론 대학에 가서도 공부와 담을 쌓는 선수와, 기본기는 외면한 채 승리를 위한 잔재주만 가르치는 지도자만 있다 보니 병역기피 같은 엉뚱한 일을 벌이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프로야구 열기가 식은 것도 메이저리그를 탓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재미를 못 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제대로 기본기를 닦지 못한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정도를 벗어난 치졸한 작전이 횡행하는 경기장을 어떤 팬이 찾겠냐고 반문한다.

그는 “‘야구 100주년 기념사업’이 의례적인 행사로 그치지 않고 과거의 교훈을 되살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이 돼야 새롭게 시작되는 한국야구의 두번째 세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2005-03-1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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