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절망에서 부르는 희망하모니 ‘코러스’
수정 2005-03-03 00:00
입력 2005-03-03 00:00
2차 대전 직후, 프랑스 마르세이유의 한 기숙학교에 부임한 음악교사 마티유(제라르 쥐노). 전쟁의 폐허속에 가족들과 떨어져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대면한 첫날, 그는 실패한 작곡가로서의 초라한 자화상을 절감하며 일기장에 착잡한 심정을 적는다.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거친 아이들이나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들어 일벌백계로 학생들을 다스리려는 엄격한 교장 모두 마티유에겐 구제불능처럼 보인다. 하지만 겨울 벌판처럼 황량한 이곳에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깃든다. 그건 어느날 밤 우연히 들려온 아이들의 노래소리. 자신의 대머리를 빗댄 가사를 흥얼대는 짖궂은 아이들의 합창에서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그는 오래 전 접었던 작곡가의 꿈을 다시 펼쳐든다.
영화 ‘코러스’(Les Choristes·3일 개봉)는 사랑에 허기져 삐딱해진 아이들과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는 참 스승 마티유가 음악을 매개로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다. 마티유의 열정적인 손끝에서 반항아 모항쥬는 천상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훌륭한 성악가로 변신하고, 늘 교문 밖에서 아빠를 기다리던 꼬마 페피노의 그리움도 사라진다. 영화는 마티유의 진심과 음악의 힘이 천방지축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마법같은 과정을 진솔하게 보여줌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자칫 평이한 스토리와 익숙한 주제의식으로 진부하게 비칠 수 있는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건 음악이다. 온갖 못된 짓을 골라하던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는 대목에선 빈 소년합창단이 부럽지 않을 정도. 특히 모항쥬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가뭄의 단비처럼 메마른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매력을 선사한다.
절망의 끝에서 ‘음악’이란 희망의 싹을 틔운 마티유와 아이들은 교내에서 벌어진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리면서 이별의 순간을 맞는다. 아무도 배웅나오지 않은 교정을 쓸쓸히 나서는 마티유. 그때 마티유의 머리 위로 아이들이 접어 날린 수십개의 종이비행기가 쏟아진다.‘난 아이들이 명령을 어기고 뛰쳐나와 인사를 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서 만났지만 우리가 헤어진 곳은 희망의 이름이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900만 관객을 모으며 일약 국민영화로 떠오른 ‘코러스’는, 파리음악학교 출신의 크리스토퍼 바라티에 감독이 1945년작 ‘나이팅게일의 새장’을 리메이크한 것. 모항쥬역의 장 밥티스테 모니에를 비롯해 극중 아이들은 모두 실제 합창단원 출신들이다.
마티유를 연기한 제라르 쥐노는 국내에는 낯설지만 프랑스에선 감독, 작가,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대스타.‘시네마 천국’으로 친숙한 자크 페렝이 성인 모항쥬로 등장하고, 그의 아들 막상스 페렝이 페피노로 출연하는 것도 흥미롭다. 전체 관람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5-03-03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