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등생 표본’ 판사 자존심 성적에 무너지다
수정 2005-02-02 08:23
입력 2005-02-02 00:00
이번에는 A∼E 다섯등급인 종합평정등급 10년치를 한꺼번에 공개했다. 앞으로는 5년에 한번씩 공개한다. 연도 표시가 없어 누가 평가했는지 알 수 없다. 가령 A가 세번,B가 다섯번,C가 두번인 사실만 확인하는 식이다.
●C등급 의외로 많아 충격
이에 판사들의 불만이 많았다.2003년 전국판사회의에서 대다수 판사들이 사시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합한 임관 성적으로 인사를 하는 것이 부당하고 비판하자 대법원은 근무평정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판사 경력 10년까지는 임관성적을,10년 이후엔 근무성적을 인사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명예에 흠집” 속앓이
10년 동안 성적을 평가받은 공개 대상 판사들은 사법시험 34회 이상 800여명으로 전체 1870명의 42%쯤 된다. 그러나 ‘성적표’를 본 판사는 절반보다 휠씬 못미쳐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등급이 낮으면 일할 의욕까지 잃을 것 같아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D,E등급은 드물지만 A,B,C 등급은 골고루 분포돼 기대밖의 성적을 받는 판사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성적을 확인한 많은 판사들이 상처를 입고 속병을 앓고 있다. 어려서부터 우등생으로 자라 지는 것을 싫어하는 판사들은 낮은 평점을 못견디는 것이다. 어떤 판사는 “판사란 명예와 자존심으로 사는 건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근무평정은 판사들의 근무태도를 눈에 띄게 바꾸어 놓았다. 출근시간이 빨라지고 판례분석 세미나 등 법원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은 개별 활동이 잦고 윗사람 눈치를 보지 않았는데 근무평정의 중요성을 인식하자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수집착 재판독립성 저해 우려
반면에 근무평정 강화가 재판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법원은 법원장이 항소율을 참고자료로만 사용하고, 파기율 등은 성적에 반영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 일부 판사들은 “한 법원장이 수십명을 평가하다 보니 항소율·파기율·미제사건 수 등 통계자료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면서 “소신 판결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 우려했다. 형사부 부장판사는 “집행유예형을 많이 선고하면 항소율이 크게 준다.”면서 “평정 때문에 실형이 필요한데도 망설이게 될까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2005-02-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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