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박지향 외 지음
수정 2005-01-22 08:06
입력 2005-01-22 00:00
‘영웅만들기-신화와 역사의 갈림길’(박지향 외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은 이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보통 영웅서사는 ‘출생의 신비함+불가항력적인 시련+영웅의 결단과 극복’이라는 구조를 띤다. 여기에다 ‘비극적인 최후’까지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요즘 인기있다는 TV드라마가 대개 이런 스토리라는 사실은 영웅서사가 가진 대중적인 호소력을 잘 보여준다.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는 함몰
문제는 이런 서사가 정작 영웅 그 사람의 삶 자체는 지워버린다는 데 있다. 누가 왜,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지워버리고 다른 내용을 채워 넣을까. 그런 의미에서 ‘영웅은 미디어’다. 여기에 죽은 뒤에야 삶이 더 파란만장해지는 영웅의 숙명이 숨어 있다.
이 책은 정복자 나폴레옹, 성녀 잔 다르크, 여왕 엘리자베스, 두체 무솔리니,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등 5명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혁명의 전파자 나폴레옹은 정작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식인귀’라 불렸다. 프랑스 역사에서 ‘나폴레옹적인 정치질서’가 환영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음에도 끊임없이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영웅으로 군림해 왔다. 우리의 박정희 전 대통령 향수와 흡사하다. 잔 다르크 역시 좌·우파의 심벌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파는 가톨릭적인 순수함으로 무장한 성녀로, 좌파는 못난 봉건시대 탓에 희생당한 민중의 딸로 기억한다. 지금은? 페미니스트다.
●잔다르크, 지금은 페미니스트?
비스마르크는 살아서도 죽은 뒤에도 독일제국의 영웅이었다. 그의 후계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던 히틀러는 권력이 안정되면서 비스마르크를 지워나갔다.
2차대전 뒤 나치즘의 선임자로서 비스마르크는 평가절하되다가 독일 통일 이후에야 냉철한 현실 정치가로서 평가받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엘리자베스의 ‘여성성’과 무솔리니의 ‘동지’ 개념도 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용됐는지 보여준다.
이 책은 구성이 이채롭다. 담론사를 다루는 책은 담론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정작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다 알고 있다.’고 전제하기 일쑤라서다.
●가상인터뷰·독백 등도 수록
이에 반해 ‘영웅만들기’는 대중서를 지향해서인지 각 인물 첫 장마다 ‘들어가기’와 ‘연표’를 통해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각 인물 마지막 장에 인물과의 가상 인터뷰나 독백 등을 실어 현대적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도 케케묵었다는 역사에 대한 선입관을 털어내기에 효과적인 장치로 보인다.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5-01-2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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