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268)-제2부 周遊列國 제6장 孔子穿珠
수정 2005-01-19 00:00
입력 2005-01-19 00:00
제6장 孔子穿珠
또한 맹자는 진심(盡心) 하편에도 증자의 효행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버지 증석은 생전에 고욤(小枾)을 즐겨 먹었다. 증자는 차마 아버지 생각에 고욤을 먹을 수 없었다.”
“증자가 병이 나자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내 발을 펴보아라. 내 손을 펴보아라. 시경에 (전전긍긍하며 깊은 못가에 서 있듯, 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는 듯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 걱정을 면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얘들아.”
죽기 직전 제자들을 불러놓고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준 증자의 태도는 생전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깊은 못가에 서 있듯 전전긍긍하며, 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듯 아슬아슬하게, 무척 조심하며 살아온 그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죽기 직전에 자기 몸에 아무런 손상도 받지 않았음을 확인받고 자기 몸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으려는 평생의 걱정을 덜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던 것이다. 증자의 이런 태도는 효경(孝經)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리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다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며, 출세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도의 끝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효경은 공자가 증자를 위해서 진술한 것’이며,‘공자는 뜻은 춘추에 실었고, 행실은 효경에 실었다.’라는 통설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증자는 이처럼 효행에 있어 제1인자였을 뿐 아니라 공자의 사상을 맹자에게까지 전수시킨 유교에 있어 종성(宗聖)인 것이다.
이처럼 공자의 제자들의 다양한 활약상을 기술해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작 스승인 공자는 68세에 노나라로 돌아와 73세의 나이에 숨을 거둘 때까지의 6년간 제자들과는 달리 오로지 교육과 인류의 영원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경전의 편저에만 여생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정치에 펼쳐 보이기 위해서 13년간이나 천하를 주유하면서 ‘만약 나를 등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겠다(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라고 선언하였던 공자가 고향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한순간 그 이상을 끊어버리고 오직 교육과 학문에만 정진하였던 것이다.
논어에는 바로 이 무렵 공자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정치를 하지 않습니까.’
이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서경에 말하기를 (효도하라, 오로지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로움으로써 그것을 시정(施政)에 반영시켜라)하였소. 이것도 정치를 하는 것이거늘 어찌 따로 정치를 하는 법이겠소.’”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로움을 가르쳐 시정에 반영시키는 것’도 훌륭한 정치라고 말한 공자의 태도는 ‘진실로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1년이면 그 나라를 바로잡을 수 있고,3년이면 완전한 정치의 결과를 올릴 수 있건만’하고 상갓집 개처럼 천하를 순회하였던 주유열국시대 때의 공자와 전혀 판이한 정반대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2005-01-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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