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기상 100년 어제와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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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25 00:00
입력 2004-03-25 00:00
25일은 우리나라에서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날.1904년 3월 일본에 의해 부산과 목포 인천 용암포 원산 등 5곳에 관측소가 설치됐고,같은달 25일 목포관측소가 처음으로 기상관측을 실시한 것이 우리나라 근대 기상의 첫기록으로 남아 있다.

1907년 2월1일 대한제국이 농상공부 소관으로 측후소 관제를 제정·공포했으나,1910년 8월 대한제국의 기상업무는 막을 내리고 조선총독부관측소로 옮겨진다.일제시대에는 일본의 대륙 진출을 위한 항공기용 상층기류 관측이 주요 업무였다.

해방 직후인 45년 9월 군정청 문교부 기상국장 겸 국립중앙관상대가 설립됐고 이듬해에 국제기상전보식에 따라 독자적인 기상업무가 개시됐다.한국전쟁 직후 90일간 국립중앙관상대 본대의 업무가 중지된 데 이어 인천상륙작전 때는 연합군의 함포사격으로 국립중앙관상대가 전소돼 각종 기상 통계자료가 소실됐다.

민간항공에 대한 기상지원 업무는 59년 11월 김포국제공항관측소의 신설로 시작됐다.정부 출범 당시 문교부 산하였던 국립중앙관상대는 62년 7월 교통부,67년 7월 과학기술처로 소속이 바뀐다.명칭도 국립 중앙관상대에서 63년 2월 중앙관상대로 개칭됐다.

1939년 9월부터는 기상관측자료를 전보로 송수신하기 시작했고,77년 한국전기통신공사의 회선을 전용으로 대여받아 직통전화망을 구성했다.

82년 1월1일자로 중앙관상대가 중앙기상대로 이름을 바꿨다.80년 최초로 정지기상위성(GMS) 수신장비를 도입해 기상장비 현대화를 추진했고,예보분야에서는 광역위주에서 벗어나 시·군 단위의 71개 구역으로 세분한 육상국지 예보를 실시했다.

중앙기상대는 90년 12월 기상청으로 승격했다.94년에는 전국 400곳에 집중호우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96년에는 기상정보의 인터넷서비스가 시작됐고,99년에는 슈퍼컴 NEC SX-5가 도입돼 예보의 정확도가 크게 향상됐다.



2002년 3월 최악의 황사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황사특보업무가 기상청으로 일원화했다.안명환 기상청장은 “100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라면서 “근대 기상 100주년을 맞아 국민에게 한발 더 가까이 가는 기상서비스를 실천,국민이 만족하는 예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
2004-03-2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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