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떳떳한 투기공화국’ 시티파크 청약마감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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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25 00:00
입력 2004-03-25 00:00
“한마디로 모두 제정신이 아닙니다.나라가 어지럽다 보니 경제도 엉망이고 사람들의 마음도 붕 떠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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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청약의 길
 서울 용산 시티파크 주상복합아파트의 청약접수가 시작된 지난 23일 한미은행 여의도지점을 찾은 청약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머나먼 청약의 길
서울 용산 시티파크 주상복합아파트의 청약접수가 시작된 지난 23일 한미은행 여의도지점을 찾은 청약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24일 서울 용산 시티파크 주상복합아파트 ‘청약광풍’ 현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직장인 양모씨가 내뱉은 말이다.

23∼24일 이뤄진 시티파크 청약에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주부,직장인은 물론 사회 지도층 인사들까지 가세했다.대다수가 입주 목적이 아닌 웃돈 받고 넘기는 투기성 청약자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죄악시하거나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모두 ‘투기 공화국’ 국민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직장일 빼먹고 청약

여의도에 직장을 둔 이씨(41·서울 성동구 성수동)는 24일 오전 10시 30분쯤 어렵사리 청약금 3000만원을 마련한 뒤 ‘로또 당첨’을 꿈꾸며 곧바로 한미은행 여의도지점으로 달려갔다.그러나 길게 늘어선 청약 대기자 줄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오후 4시 이후에나 접수가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는 걱정이 됐다.사무실에는 옆자리 직원에게만 잠시 외출 사실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를 냈다.당첨만 되면 월급쟁이로서 평생 만져볼 수 없는 거액을 쥘 수 있다는 기대감이 머리를 스쳤다.여의도지점은 모델하우스와 가까워 청약자가 몰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마포쪽으로 달리고 있었다.휴대전화로 114안내를 걸어 마포지점을 어렵게 연결했다.하지만 마포지점 역시 300여명이 줄을 섰다는 말을 듣고는 다시 방향을 바꿨다.

수도권 변두리에는 청약자가 덜 몰릴 것이라고 판단,114로 김포지점을 찾았다.그러나 김포에는 한미은행이 없었다.다시 일산지점으로 전화를 걸었다.오후 늦게나 접수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듣고는 강서구에 있는 지점을 찾았지만 마찬가지 대답이었다.부천과 인천지역 상황을 체크했다.인천 부평지점은 줄을 선 사람이 50여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경인고속도로로 차를 몰았다.회사에는 전화로 급한 일이 있다고 얼버무렸다.은행에는 12시가 넘어 도착했다.번호표를 뽑고 줄서기에 들어간 결과 2시 이전에 청약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회사로 돌아왔을 때는 2시30분이 넘었다.

공무원도 투기광풍에 가세

청약대열에는 사회 지도층 인사와 공무원도 끼어 있었다.‘대박’앞에서는 가치 판단과 실천이 달랐다.한 경찰 공무원은 “분양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이 청약하는 것은 투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고민했다.그런데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아 부랴부랴 청약금을 마련해 대리 접수시켰다.”고 털어놨다.

주부들은 더 떳떳했다.여의도 지점에서 만난 주부 김모씨는 “내 돈 갖고 실명으로 청약하는데 무슨 잘못이냐.불법도 아닌데 청약도 못하느냐.당첨되면 정당하게 세금 내고 넘길 것이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청약한 서연희(37)씨는 “전세를 살고 있는 처지다.당첨돼도 입주 능력이 안된다.”면서 요행 청약을 숨기지 않았다.그녀는 “당첨되면 웃돈으로 내집마련 ‘종자돈’을 마련하겠다.”면서 청약 동기가 순수했음을 애써 강조했다.

김재성(43)씨는 24일 오후 청약 창구가 붐비자 일반창구에 통장을 개설한 뒤 인터넷뱅킹에 가입해 청약하는 재빠름을 보였다.한미은행측은 김씨와 같은 사례가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난의 소리도 많아

네이버 시티파크 카페에 글을 올린 시민(leegrace3)은 “인간의 생활필수요건(주거시설)을 갖고 돈을 벌려고 한다.”면서 “청약에 참여한 사람들은 창피한 나라의 창피한 국민들”이라고 비난했다.

박왕진씨는 “한탕주의가 빚어낸 결과”라면서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주는 정치,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 경제,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찬희기자 chani@˝
2004-03-2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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