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거부→탄핵 수순 盧의 계산된 모험?

  • 기사 소리로 듣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공유하기
  • 댓글
    0
수정 2004-03-18 00:00
입력 2004-03-18 00:00
우리 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꾼 지난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 관련 기자회견.노 대통령은 야당의 사과요구를 거부했고,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노 대통령이 회견을 갖기 전날인 10일 청와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미지 확대
노무현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후속 취재 결과,노 대통령은 이미 회견 며칠 전부터 선거법 위반 발언 관련 사과를 안 하기로 홀로 결심을 굳혔던 것으로 보인다.‘11일 사과거부→12일 탄핵소추안 가결’은 즉흥적으로 파생된 ‘사태’가 아니라,노 대통령이 숙고 끝에 내린 결정에 따른 ‘사건’인 셈이다.

17일 열린우리당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간 10일 저녁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와 정동영 의장은 3시간 간격으로 청와대를 차례로 방문해 노 대통령과 사과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두 사람은 “야당의 탄핵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그러니 파국을 막기 위해 사과를 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의 건의를 했으나,노 대통령은 “이 문제는 내 생각이 있다.나한테 맡겨달라.”고 사실상 사과를 안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정 의장과 김 대표가 각각 노 대통령에게 정반대의 건의를 했다는 관측도 있다.11일 아침 노 대통령 기자회견 직전 개최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김 대표는 “(대통령이)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한 반면,정 의장은 “야당이 사과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아마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공유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확대
지난 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의장이 중앙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김근태 원내대표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지난 9일 열린우리당 정동영의장이 중앙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은 김근태 원내대표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의원총회 발언으로만 보면 김 대표는 사과를,정 의장은 사과 거부를 건의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김 대표는 17일 기자의 확인에 “이미 다 지난 일인데 뭘…”이라며 언급을 피했다.정 의장은 청와대 방문 사실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사람이 어떤 건의를 했든,중요한 것은 노 대통령이 이미 사과를 안 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는 것이다.이같은 노 대통령의 의중은 박관용 국회의장측의 전언으로부터도 확인된다.박 의장은 10일 노 대통령과 4당대표간 회담을 청와대에 제의했으나,청와대측은 “대통령이 탈진해 있어서 어렵겠다.”며 거절했다고 김석우 국회의장 비서실장이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정황에 대해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철 전 특보는 17일 “노 대통령은 지난 50여년간 왜곡돼온 한국의 정치구조를 바꿀 수만 있다면 대통령을 안 해도 좋다는 심경을 평소 여러차례 밝혔다.그러니 야당의 부당한 요구에 사과를 안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면서 “노 대통령의 스타일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2004-03-18 4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터 추천 인기 기사
많이 본 뉴스
원본 이미지입니다.
손가락을 이용하여 이미지를 확대해 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