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41)-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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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3-03 08:53
입력 2004-03-03 00:00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자신보다 먼저 체포된 8명의 동료들을 보자 기가 막힌 조광조는 즉시 술을 가져오도록 한 후 달빛이 가득한 뜰에서 함께 나눠 마시며 작별인사를 나누기 시작하였다.
개혁을 추진해오면서 훈구파의 반발 우려가 없지는 않았으나 중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조광조는 하룻밤 사이에 체포되어 의금부에 갇히게 되자 도저히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우리 상감을 보고 싶다.”
조광조는 술에 취해 울면서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여전히 조광조는 중종의 믿음에 대해 의심치 않고 있었으므로 이 사태가 중종이 모르게 진행된 모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김식이 이렇게 말하였다.
“대감,우리 모두 신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도록 하십시다.”
대사성 김식은 다른 대신들과는 달리 무인으로서의 기질이 있었다.훗날 조광조가 죽자 거창의 산 속으로 도망가 심정을 암살하려고 모략을 꾸미다가 실패하자 자살하여 죽은 김식은 이 거사가 다름 아닌 중종이 꾸민 사화임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다만 우리 상감을 보고 싶소이다.”
조광조는 여전히 이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왜냐하면 다음과 같이 울며 통곡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므로.
“우리 상감이 어찌 이 일을 알리오.” 이 자리에서 몇 사람은 서로 술을 나눠 마시면서 시를 읊어 마음을 달랬는데,조광조도 화답하여 시조 한 수를 읊었다.조광조가 남긴 시로서는 유일한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길 건너 일편석이 강태공의 조대(釣臺)로다.문왕은 어디가고 빈 배만 남았는고.석양에 물차는 제비만 오락가락하더라.”
조광조가 사화가 일어난 바로 그 밤에 이 시조를 지었는지,과거에 지었던 시조를 달 밝은 의금부 뜨락에서 다시 외어 읊었는지,그 사실은 분명치 않으나 어쨌든 조광조가 읊은 시조의 내용은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자신을 강태공에 비유하고 중종을 문왕으로 비유하였던 조광조.
일찍이 주(周)나라를 건국한 문왕 희창(姬昌)은 뛰어난 영웅이었는데 상(商)나라의 주왕(紂王)은 그의 뛰어난 재주를 두려워하여 그를 한적한 시골에서 구금생활을 하게 한다.그곳에서 치욕을 참으며 시간을 보내던 희창은 그의 부하들이 보낸 뇌물과 미녀들에 의해서 구사일생으로 풀려나게 된다.
복수를 결심한 그는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찾다가 위수(渭水)의 지류 반계반(磻溪畔)에 이르러 수염과 머리가 반백인 노인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침 사냥을 나가려던 희창은 점쟁이를 불러 사냥감을 점쳤을 때 점쟁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오늘 잡히게 될 물건은 용도 아니고 곰도 아니옵니다.그러나 대왕에게 반드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낚시를 하고 있던 노인을 보자 바로 그 사람이 점쟁이의 말대로 반드시 사냥해야 할 인재임을 꿰뚫어 본 희창은 유심히 노인을 살피고 있었는데,노인은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시 바늘로 낚시를 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원하는 놈은 걸려라.원하는 놈은 걸려라.”
천하의 인재를 사냥하기 위해서 전국을 순회하는 문왕 희창이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천하의 영웅을 낚기 위해 미끼도 없는 곧은 낚시로 ‘원하는 놈은 걸려라.’하고 중얼거리고 있던 강태공,결국 두 사람 모두 천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문왕과 강태공, 두 영웅은 서로 손을 잡고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2004-03-03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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