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를 사는 사람들/“채식·소식이 장수 비결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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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1-01 00:00
입력 2004-01-01 00:00
삶을 좀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는 없을까.누구나 바라는 소망이지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그렇다면 우리나라 장수벨트인 전북 순창,전남 담양·곡성·구례군에서 100세를 넘긴 초장수인들의 삶은 어떤가.“100살은 살아야제.”라는 우스개 말처럼,1세기를 살고도 치매는 커녕 총총한 기력을 과시하는 이들의 남다른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지난달 15일 전북 순창군 팔덕면 창덕리 동고마을을 찾았다.마을 앞 표지석에 장수마을이라는 글씨가 반긴다.설양님(102) 할머니는 막내 딸 이금옥(68)씨와 외손자 부부 등 3대가 함께 살고있다.이미 고손자를 봤다.딸은 “어머니가 3년 전부터 눈이 안보이신다.하지만 하루 세끼도 양은 적지만 꼬박꼬박 챙겨 드신다.”고 했다.“일평생 뭘 많이 드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딸의 말에,할머니는 “괴기(고기)보다는 두릅이나 취 같은 산나물을 뜯어다 섞어서 많이 묵었제라.”라며 거들었다.할머니는 거동만 불편할 뿐 귀도 밝고 듬성듬성하나마 이도 남아 있고 혈색도 좋아 잔병치레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지금껏 술·담배와는 남이다.할머니는 친정 동기간 6남매 중 80살이 넘은 막내와 둘만 남았다.

●푸성귀 반찬에도 세끼 밥은 꼭 먹어

전남 곡성군 입면 금산 4구 택촌마을 이숙영(103) 할머니는 기자가 방안에 들어서 사진 좀 찍겠다고 하자,며느리 양정순(82)씨 한테 “사진 찍을라먼 빗 가져오니라.쉐타(스웨터)도 좋은 놈으로 가져오고”라며 언성을 높였다.16살에 시집 온 며느리는 웃으면서 “엄니하고 고부간에 좋게 지냈어요.바깥양반 살아 있을 때도 한방에서 둘이 자곤 했는디”라며 빗을 찾았다.할머니의 유일한 낙은 담배다.요즘도 1갑을 해 치운다.가끔 술도 한잔씩 한다.“가슴애피(답답증)가 올라오먼 담배라도 피워야 내려간다.”고 며느리가 해명했다.보고 듣고 말하는 데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푸성귀 반찬에 세끼를 거르지 않고 집앞 텃밭도 가꿀 만큼 정정하다.

구례군 구례읍 원방리 이복덕(100) 할머니가 사는 양옥의 현관 초인종을 몇번 누르자 증손자인 박승연(4)군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할머니를 찾자 “할무니병원 갔는디”라고 맞받았다.되돌아 서려는 데 방안에서 할머니가 나왔다.손자는 “아아 우리 상할머니”라며 웃었다.

할머니는 큰 소리로 가까이서 말해야 알아듣는 것 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맵시있고 고왔다.식사도 잘하고 치아도 거의 완벽했고 얼굴색도 갓 60을 넘었을 정도로 보일만큼 밝았다.“따뜻하먼 밭도 메고 힘 안들고 하는 가벼운 일은 하제”라고 힘줘 말했다.먹는 것 입는 것 탓하지 않고 “그러려니.”하고 살았다고 한다.반대로 며느리(68)는 요즘 위가 안좋아 병원 출입이 잦다.“어머니는 뭐든 잘 드시지만 돼지고기는 중풍에 좋지 않다며 젊어서부터 안드셨다.요새도 양말을 신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시다.”고 자랑했다.할머니 동기간도 수를 누리는 장수집안이었다.4남 1녀 중 남은 남동생(97)과 여동생(80)도 건강하단다.

대대로 장수마을인 담양군 대전면 태목리에 사는 이도음(103) 할머니는 취재한 100세인들 가운데 단연코 으뜸이었다.6남매 자식들과 떨어져 홀로 살면서 손수 연탄 갈고 전기밥솥에 밥도 지었다.가난의 굴레가 오히려 긴장감을 떨어뜨리지 않아 건강을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살며 밥 짓고 밭일도 ‘척척'

마당 한쪽 20여평에 기른 마늘이 한뼘 이상 올라와 싱싱했다.허리가 구부정할 뿐 눈·귀가 밝고 군수가 준 지팡이도 걸어두고 쓰지 않았다.할머니는 “그때는 먹을 것이 없었어라.젊어서도 괴기만 묵으면 몸뗑이에 두드러기가 났응께.태어나 처음으로 작년에 병원이란 데를 가봤당께”라며 또박또박 설명했다.허리 한번 맘놓고 펼 시간없이 힘든 일평생이었다.일할 때 텁텁한 막걸리는 허기도 채워주고 힘도 나게 했다.먹고 자고 입는 것 등 어느 하나 변변한 게 없었다.친정 동기간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먼저 갔다고 한다.

이곳에서 30리 떨어진 봉산면 기곡리 연산마을 양덕술(103) 할머니는 청력을 완전히 잃었으나 꼿꼿한 자세만큼은 여전했다.전주이씨 종갓집 6대 종부이니 오죽했겠는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었다.지금도 스스로 화장실 가고 거동할 수 있다.며느리 최미순(73)씨는 “어머니는 젊어서부터 아무리 아파도 절대 죽을 드시지 않고 적게 드시더라도 꼭 밥을 달라고 하셨다.”고 건강비결을 들었다.

이처럼 100세인들은 보통사람들의 삶과 사뭇 다르지 않았다.허리춤이 시릴 정도로 배고프고 춥던 시절을 몸으로 부대끼며 살았다.입에 풀칠하느라 자식들 교육시키느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길쌈질에 논·밭일에 시달렸다.잠도 충분치 못했다.하지만 한결같이 소찬에 꽁보리밥이었지만 가리지 않고 맛있게 이웃들과 나눠가며 먹었다.오늘날 장수법의 공식으로 여겨지는 소식(小食)처럼 적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또 이들은 맘이 넉넉하고 성질이 유순했다.장수벨트에 사는 100세인 28명 가운데 할아버지는 단 한명도 없었다.대대로 장수하는 이복덕 할머니를 빼고는 가족중에 특별한 장수인도 없었다.

전남 곡성·구례·담양,전북 순창 남기창기자 kcnam@

■담양 오계1리 주민들의 ‘건강한 삶'

장수마을인 전남 담양군 담양읍 오계 1리는 39가구에 주민 106명으로 65세 이상이 27명이고 80세 이상이 11명이다.

65세 이상부터 80세 이상 비율이 40.7%나 돼 군 전체(19.4%)보다 두배 이상 높다.

오계 1리는인동 장(張)씨 집성촌이다.이웃간에 성님(형님) 동생하며 정답게 산다.

담양읍이지만 더 이상 못가는 막장이어서 지형상 ‘소쿠리 속 같다.’는 마을이다.때문에 한국동란 때 피란민들이 들끓었다고 한다.농토가 풍족지 않아 농한기에는 대바구니와 베짜기로 생계를 꾸려온 전형적인 농촌이다.

80세 이상자 가운데 남자는 장문열(90)씨 등 2명뿐이다.겨울에는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서 고구마를 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마을 내력을 소상히 알고 있는 노인회 장규환(71) 총무는 “우리 마을은 대대로 장수마을인데 소나무 우거진 산으로 둘러쳐진 형상이 옥녀가 가야금을 타는 ‘옥녀탄금(玉女彈琴)’ ”이라며 명당자리임을 강조했다.이어 “마을이 삿갓봉 아래에 자리해 배수가 잘되는 배산임수형”이며 “장수하는 데 따로 방법이 있는 게 아니고 자연에 맡기고 살아야 수를 누린다.”고 진단했다.

며칠 전 마을회관에 모인 70세 이상 노인 14명은 입을 맞춘 듯 장수비결로 마을 앞 공동샘을 들었다.바가지나 두레박으로 퍼올리는 샘이 아니고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이 사시사철 넘쳐나는 샘이다.어려서부터 마시기 시작했는 데 지금도 그 물맛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장금례(89) 할머니는 도움없이 걸어다니고 식사도 곧잘 한다.진정임(88) 할머니는 “시집 올 적부터 물맛이 꿀맛 같았제.”라고 회고했다.김묘례(81) 할머니는 “피부가 새색시처럼 뽀얗다라는 말을 듣는 디 물 때문이 아닌가 싶구만요.”라고도 했다.

김봉이(85)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닐 때 뒤뚱거릴 뿐 다른 데는 별달리 아픈데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14명 가운데 흡연자는 5명이었다.하루 1갑을 피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10개피 이내였다.일할 때 이외에는 막걸리도 입에 대지 않았다.이들 가운데 속이 아프거나 지병 등으로 식사를 못하는 노인은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유달리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나물과 야채 등 소찬에다 꽁보리밥에도 감사했다고 한다.평생 동안 논·밭일, 집안일에 매달렸다.

연세가 높은 이들이었지만 느닷없는 낯선이의 방문에도 회관 방바닥을 걸레질하며 자리를 비켜줬고 몸둘 바를 몰라 할 정도로 순수한 맘을 간직하고 있었다.

1시간 넘게 취재하는 동안 담배 한모금은 커녕 다리 한번 뻗질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겸손의 미덕을 간직하고 있었다.

담양 남기창기자
2004-01-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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