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피와 땀이 서린 문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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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11-19 00:00
입력 2003-11-19 00:00
한편 이들과는 달리 신분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대단한 재산을 모은 여불위(呂不偉)도 빈객들을 초빙하는 일에 전념하였다.그는 상인 출신의 미천한 신분이었으나,결국 그 당시 가장 세력을 떨치던 진(秦)나라의 재상이 되어 나이 어린 왕인 정(政)으로부터 중부(仲父;아버지의 아우)라고까지 불리며 자신의 위세를 만천하에 떨쳤던 것이다.
그가 빈객들을 모으게 된 동기는 진나라가 강국이면서도 어진 선비와 재능 있는 자들을 우대하지 않은 데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다.그의 밑에 있던 지식인의 수가 무려 3000명이나 되었다.
여불위는 자기의 식객들 가운데 뛰어난 문장력과 탁월한 식견의 소유자인 선비들을 뽑아서 글을 쓰게 하고는 팔람(八覽),육론(六論),십이기(十二紀)로 분류하여 모두 20만 여 글자를 쓰게 하였다.그는 이 책이야말로 천지 만물에 대한 고금(古今)의 지식을 모두 동원하여 쓴 것으로 판단하고는 자신의 성을 따 ‘여씨춘추(呂氏春秋)’라고 불렀다.‘여씨춘추’의 내용은 역사적인 견문을 비롯,옛 사람들의 유언(遺言),옛글 중에서 빠진 글 등이 대부분이며,천문학과 의학,농학 등과 관련된 것도 실려 있다.
그리고 유교와 도교 사상이 주류를 이루지만 명가,법가,묵가,음양가의 견해도 포괄되어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이 책의 문장이 훌륭하다는 것이었다.여불위는 이 책을 함양(咸陽)의 성문에 진열하고,그 위에 천금(千金)을 걸어 놓고서,각 제후국의 선비나 빈객 중 그 누구라도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에게 천금을 주겠다고 널리 알렸다.그 당시 뛰어난 빈객들이 저마다 앞을 다투어 ‘여씨춘추’의 문장에 손을 대려했지만,그 누구도 한 글자도 고치지 못했다고 하여 이 책은 더욱 유명해졌다.
당나라의 시인 가도(賈島) 역시 길을 걷다 문득 시상이 떠올라 시를 짓다가 글자 한 글자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당시 경조윤의 직책에 있던 대문장가 한유의 행차를 막게 되었다.“비켜라,어느 안전이라고 무엄하게 길을 막느냐?”는 수행원들의 고함소리에 아랑곳하지 하지 않고,자신이 맨 마지막 시구의 한 글자를 ‘퇴(推)’로 해야 할지 ‘고(敲)’로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길을 막게 되었다고 했다.오히려 한유는 화를 내기는커녕 빙그레 웃으며 자신도 골똘히 생각하다가 ‘고’자가 더 낫다고 하고는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오면서 시를 논했다고 하는 일화가 신선하다.
이렇듯 중국의 옛 선현들이 작품을 지을 때 한 글자 한 글자에 온힘을 쏟아 부었는데,그러한 과정에는 처절하리만큼 피눈물 나는 노력이 뒤따랐다.그렇기에 흔히 술 한말에 시 백편을 쓴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백의 시보다,글자 한자 한자에 세심하게 퇴고하기로 유명했던 두보의 시가 줄곧 우리나라에서 훨씬 더 많이 읽힌 이유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정녕 작가에 뜻을 둔 문학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일자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문장과 한 글자 한 단락에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글을 만나고 싶은 것은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김 원 중 건양대교수 중문과
2003-11-19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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