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에세이]가치관의 변화가 진정한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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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7-29 00:00
입력 2003-07-29 00:00
하지만 일찍부터 영어공부에 내몰리며 자기가 최고인양 생각하는 아이들을 보며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용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공직에 첫발을 들여놓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절,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화학물질 관리에 관한 회의였는데,‘동물복지(Animal Welfare)’에 관한 의제가 눈에 띄었다.화학물질의 독성을 밝히기 위한 실험 때문에 너무나 많은 동물이 희생되고 있어 동물복지 차원에서 동물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실험방법을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처음 의제를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잘 사는 나라들의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회의석상에서 각 나라 사람들의 발언은 내 생각과는 달랐다.그들은 실험대상을 동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동물복지를 위해 동물들의 희생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간과 비용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었다.회원국들은 공동으로 새로운 실험방법을 마련하고 개별 국가가 대응할 때 생기는 부담을 줄이는 것까지 합의점을 이끌어냈다.
환경부 공무원으로서 나름대로 건전한 환경관을 가졌다고 자부한 내 자존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사람 살기도 힘든 마당에 감히 동물의 가치와 인간의 가치를 동등한 자리에 놓고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합의를 통해 대안을 찾는 것을 지켜보면서 ‘국가 이익을 관철해야 한다.’는 기계적이고 막연한 나의 사명감이 초라하게 느껴졌었다.
우리는 흔히 세계화라고 하면 세계인과의 무한경쟁을 떠올리기 쉽다.그리고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외국어 실력부터 강조한다.과연 그럴까?
지금 우리는 아이들을 유창한 외국어와 세련된 국제매너를 발휘하는 개인적이고 기계적인 아이로 키우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쯤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국제회의에서 이기는것은 언어보다 사고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는 요즘도 기승을 부리고 있는 황사문제며,지구온난화와 오존층 파괴 등으로 환경재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아직도 해결책을 얻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고 있는 지구촌의 환경문제가 산적해 있다.하지만 이런 문제점들은 어느 한 나라의 노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각국의 공동 노력없이는 더 큰 재앙만이 반복될 뿐이다.
세계화에 발맞춰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변화라 생각된다.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자세는 세계 어디서나 공통으로 통하는 또 다른 언어이다.세계화란 각국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지구촌의 고민은 곧 우리의 고민이란 의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국제협상에서 조금 양보하면 ‘나라를 팔아 먹는 이적행위’ 운운하는 것은 안 될 말이다.지구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자세만이 진정한 세계화의 중심국이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정선화 사무관
2003-07-2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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