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사교육비와 학벌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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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7-24 00:00
입력 2003-07-24 00:00
고등학교 2학년,막내 아이가 방학을 맞았다.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공부하고 담 쌓고 지내다가 고등학교에 와서야 입시경쟁에 뛰어든 딸아이는 이번 방학에는 학원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다.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 치고는 딸아이의 성적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지만,아이 말에 따르면 혼자 공부해서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그럭저럭 성적을 올릴 수 있어도,수능 모의고사 점수를 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 한다.특히 수학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는 자기 성적이 1학기 평균 98.5점에 학년석차가 14등이지만 수능 모의고사에서는 80점 만점에 40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면서 제 언니들하고 둘러 앉아 계획을 세우는데,월·수·금 종합반 50만원,화·목 수학전문학원 25만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서실비 10만원 해서 모두 85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수입에 비해 가히 천문학적인 과외비 앞에서 절망하는 나처럼 가난한 이 땅의 부모들을 위해 정부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무슨 위원회를 만든 모양이다.이 위원회에서 사교육비를 경감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는데 그 가운데는 방과 후 학교를 학원에 임대해서 사교육에 대한 수요를 학교 안에서 해소하려는 엽기적인 발상까지 있다.그래서,학원에 가지 않고도 학교가 학원을 대신해 모든 학생들이 수능시험에서 수학을 만점 받게 만들어주면 사교육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겠는가? 어리석은 생각이다.모두가 수학에서 만점을 받으면 신문들이 들고 일어나 수능시험의 변별력이 떨어진다고 떠들어 댈 것이다.그러면 수능시험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다시 학생들을 입시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을 찾게 될 것이다.

사교육이 창궐하는 것은 공교육이 부실해서가 아니다.한국의 공교육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하더라도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는다.공교육은 모두를 위한 교육이다.그러나 서울대학의 입학정원은 전체 수험생의 0.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따라서 공교육이 아무리 좋아진다 하더라도 모두를 위한 교육만 받아서는 서울대에 합격할 수 없다.최상위 0.5%에 들기 위해서는 다시 자기만의 비법을 개발해내지 않으면 안된다.그 수요에 대한 대답이 사교육이다.그러므로 서울대가 건재하는 한 사교육은 절대로 근절될 수 없는 질병이다.

이즈음에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모두 학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그러나 과연 학벌문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제는 한 대학,즉 서울대 학벌이 한국의 권력을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따라서 이 정부가 진심으로 학벌을 타파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하기를 원한다면 최선을 다해 서울대의 권력독점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는 시민단체인 ‘학벌없는 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개인적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학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를 없애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한 일은 놀랍게도 13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들 가운데 12명을 서울대 출신으로 임명한 일이었다.이런 사정은 장관 임명에서도 다르지 않아서김대중 정부에서 절반 정도로 낮아졌던 서울대 출신 장관의 비율은 새 정부 들어서 다시 60%로 높아졌다.

현실이 이러하니 대통령이나 정부가 아무리 학벌을 타파하겠다고 외친들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한국의 교육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제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지역을 안배하고 여성을 배려하듯이,학벌에 따라 각료들을 안배하는 것 역시 불문율로 만들어야 한다.임명권자인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 보다 어려운 일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허풍이거나 위선일 뿐이다.

김 상 봉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교장
2003-07-24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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