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주치의제도 - 왜 도입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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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5-12 00:00
입력 2003-05-12 00:00
인도네시아의 의사 공무원인 아지즈 박사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을 연구하기 위하여 현재 서울에 체류 중이다.한국 방문 전에 우리 제도에 대하여 사전 연구를 하였고,서울에 와 한달 간 수집한 정보와 자료를 통하여 어느 정도 우리 제도에 대한 이해를 하고 있는 그녀이다.아지즈 박사가 지난주에 한국의 건강보험 및 의료제도에 대한 몇 가지 질문을 필자에게 하였다.

아지즈 박사의 질문을 접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느낄 수가 있었다.우선 그녀는 우리 제도의 내용 및 모양새를 꽤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과,그런 파악에도 불구하고 우리 제도의 사정에 대한 이해가 속속들이 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그녀의 질문들은 ‘왜 그런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물론 그런 질문과 대답을 통하여 그녀 나름대로의 현상에 대한 해석을 달아보고 싶어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는 한국의 환자들이 왜 진료를 위한 의료기관을 전문가의 도움 없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느냐 하는 질문을 하고 있다.보건의료 전문가인 아지즈 박사는,전국민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 한국에서 환자를 위한 의료기관의 선택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한국의 보건의료 현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왜 그런 현상이 만들어졌느냐를 꼭 알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질문의 요지는 바로 주치의제도의 미비이다.환자가 전문의료지식을 거의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자스스로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큰 것은 자명하다.이것은 마치 세상물정에 밝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선택하라고 내버려두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의료의 경우 선택이 잘 못되었을 때 그것으로 인한 고통증가 및 비용부담은 결국 환자에게 귀착되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처럼 주치의를 두는 의료제도로 만들면 되지 않으냐 하는 의문의 제기였다.OECD 선진대열에 합류한 한국에서 환자를 보호하는 그러한 제도가 왜 만들어지지 못하는 가에 대한 아주 근원적인 의문을 그녀는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었다.

주치의제도의 근본은 무엇보다 전문가인 의사의 판단에 의하여 환자로 하여금 적절한 진료를 받게 하는 것이다.적절한 진료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데,예를 들어 양적으로 필요 이상의 진료를 받지 않는 것을 포함하여,환자 및 가족의 병력을 잘 알고 있는 의사에 의한 질적 관리,그리고 환자의 아픔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의료제공자의 역할 등이 그것이다.

현재와 같이 상당수의 환자가 가벼운 감기로 일주일에 서너번씩 병의원 문을 두드리는,그리고 환자 스스로 판단하여 약국으로,종합병원으로,한방으로,유명 의원으로 의료 쇼핑을 다니는 것과 대비가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주치의제도 아래서는 주치의의 1차진료와 그 결과에 의해서만 전문의의 전문진료를 받을 수가 있다.혹자는 그것을 환자가 갖는 선택권의 제한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지만 기실은 환자의 보호로 보아야 한다.왜냐하면 전문지식의 결여로 인한 환자들의 잘못된 선택을 사전에 예방함으로써 환자의 불필요한 신체적 고통,시간비용,그리고 화폐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소비자의 선택권을 시장원리의 근본으로 삼고 있는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유독 의료서비스 이용에 관한 한 주치의제도를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규제개혁의 정당성은 무엇보다 국민보호에서 찾아진다.환자의 무분별한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건강이 더 효율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면 보건의료 부문의 규제개혁은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치의 제도의 도입과 같이 환자의 선택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이것이 시장본위주의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보건의료의 아이로니컬한 내면인 셈이다.주치의제도 미비에 대하여 아지즈 박사에게 우리 속사정을 들어 구차한 변명을 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양 봉 민 서울대 교수 응용경제학
2003-05-1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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