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안으로 끌어들인 ‘醜의 미학’/김지하 수묵시화첩 ‘절, 그 언저리’
수정 2003-04-02 00:00
입력 2003-04-02 00:00
시화첩은 2001년 봄부터 지난해 가을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절 순례 시 32편에다 매화·난초·달마를 소재로 “만날 먹장난”한 수묵화를 보탠 것이다.가는 곳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상상의 나래 속에 선인들을 불러들여 민족의 앞날을 사색한 힘겨운 기록들이다.
그는 “지난해 시집 ‘화개’의 애잔함·슬픔을 넘어 선(禪)적 생명의 숭고함에로,불(佛)적 영성의 심오함에로 나아가고자 했고,그 과정에서 ‘괴(怪)’와 ‘기(奇)’와 ‘추(醜)’를 도리어 시 안으로 끌이들이고자 했다.”고 말한다.
선문답처럼 들리는 설명을 이해하려면 ‘신춘대담’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홍용희 경희사이버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김지하는 지난해 ‘붉은 악마와 촛불 행진’으로 터져나온 민족의 역동성을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나는 민중적 힘”으로 바라봤다.이 힘을 문학적 추동력으로 전환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해 이론화 이전에 추,괴,기,축제성,골계에 근거한 이미지네이션을 통한 작품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흔히 비정상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는 추,괴,기 등에 당대 문화논리를 전복할 수 있는 힘이 잠재돼 있다.대담에서 그는 김정희의 예를 들면서 그가 당대에 유행하던 우아하고 귀족적인 글씨를 부정하는 그릇을 ‘괴와 기의 미학’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 정점을 김지하는 눈 속에서 봄을 예언하는 매화로 비유한다.“유생들은 꽃에만 집착했지만 구부러진 줄기와 몸체,거기에 진짜가 있다.”며 이것이 서구의 ‘추(醜)의 미학’과 통한다는 것.이 미학이 문예부흥·문화혁명을 관통하며 추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절,그 언저리’는 이런 그의 주장을 시와 그림으로 모색한 것이다.환웅·단군의 얼굴을 붉은악마에 연결하는가 하면(시 ‘삼성각’),‘백정의 스승이 되고/민중의 참벗이 된’(‘백정의 난’)동학당소년 접주 김도야가 독학한 수묵기법을 통해 가능성을 찾기도 한다.
이종수기자
2003-04-0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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