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관촌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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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2-27 00:00
입력 2003-02-27 00:00
‘나는 여태껏 그 대복어매처럼 수다스럽고 간사스러우며,걀근걀근 남 비위 잘 맞추고 아첨 잘하는 여자를 본 일이 별반 없는 줄로 안다.그녀는 별쫑맞게도 눈치가 빨라 무슨 일에건 사내 볼 쥐어지르게 빤드름했고 귀뚜라미 알듯 잘도 씨월거리곤 했는데,남 좋은 일에는 개미허리로 웃어주고,이웃의 안된 일엔 눈물도 싸게 먼저 울어댔으며,욕을 하려 들면 안팎 동네 구정물은 혼자 다 마신듯이 걸고 상스러웠다.’

‘관촌수필’(1977)은 걸쭉한 입담과 어느 깊은 고을 한 틈새에서 솎아 내왔는지 모를 구수한 토속어가 따끈따끈한 시골집 아랫목에 잘 띄운 청국장 냄새를 연상시키는,‘이문구 표’ 문체의 전형을 보여 주는 소설이다.관촌수필의 문체는 ‘어휘,비유,문장의 흐름 자체가 근대화로 일컬어지는 사회적 변화에 완강히 저항하는 자세를 느끼게 한다.’(염무웅)는 이념적인 해석도 있다.하지만 그보다는 파동이 이는 듯한 음악성을 지목한 ‘청감(聽感)의 시학’(송희복),‘읽을수록 새로운 맛으로 감아드는 점착적(粘着的)인 문체’(김상태),‘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송기숙)같다는 표현들이 ‘정치’보다는 ‘인간’의 깊은 품을 소중히 여겼던 작가의 성정에 더 잘 어울리지 않는가 싶다.

작가는 문단의 양대 진영에서 진보를 앞세운 ‘민족문학작가회의’이사장을 지냈지만 사람을 아우르고 어려운 이를 챙길 줄 아는 큰 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사소한 오해로 스승인 김동리선생이 ‘작가회의’에서 비판을 받자 미련없이 이 단체를 탈퇴한 일화도 있거니와 병상의 스승을 지키는 그에게 고은 시인은 ‘모인 사람 다 떠나간 무정한 세월에도 딱 한두 사람으로 남아 꺼져가는 불을 쬐고 있을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작가회의’로 돌아와서도 3개 문인단체를 끌어모아 문인복지사업을 챙기고 안티조선의 비난 속에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나는 어느 문인들이나 다를 바가 없는 생활을 해왔다.’고 담담히 토로하는 무구(無垢)함을 가졌던 작가 이문구(63).그가 별세했다.문단은 ‘어른’을 잃었고 독자는 ‘우리말의 살가운 고향’을 잃었다.고인의 명복을 빈다.

신연숙 yshin@
2003-02-2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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