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010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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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3-01-20 00:00
입력 2003-01-20 00:00
세상이 바뀐다고 한다.010시대가 된다고 한다.내년부터는 휴대 전화를 신청하면 다짜고짜 01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준다고 한다.이동 통신 사업자를 바꾸더라도 그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다고 한다.언제 어디를 가나 본인이 바꾸려 하지 않으면 평생 쓰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름이 새로 생기는 셈이다.동명이인(同名異人)도 있을 수 없는 나만의 이름이다.아마 진짜 이름이 될 것이다.하루에 한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은 우리네가 하루에 세 번 이상은 휴대 전화를 건다고 하지 않던가.

010시대는 세상 사람들의 인연 패러다임도 바꿀 것 같다.인연 맺기도 쉬워지면서 끊기는 어려워질 것이다.사람들 만나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된다는 게 결국 연락처 주고 받기 아닌가.이사하고 집들이하면서 바뀐 전화번호를 주고 받는다.인연이 식으면 근무 부서 바뀔 때 연락처만 알려 주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이제 그게 안된다.휴대 전화 번호를 건네는 순간 인연은 맺어지고 그 인연의 굴레를 떨치기가 사실상 어렵게 됐다.휴대 번호가 평생 번호인 까닭이다.

옛 사람들은 이름을 자신의 인격으로 여겼다.이름에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담으려 했다.대개 세 개쯤 있었다.태어나며 부모가 붙여주는 이름이 본명이다.성인이 되면 자(字)라는 이름이 생겼다.

학문이나 연배로 보아 ‘윗분’이 그 사람의 심성이나 취향 등을 칭송하며 내리는 이름쯤 된다.세월이 흘러 세상에서 어느 정도 입신을 하면 스스로 호(號)라는 이름을 만들었다.평소 지향하는 표상을 구체화하기도,추구하는 심성을 은유하기도 했다.

세상에 이름 많기로 하면 김정희 선생일 것이다.추사(秋史),완당(阮堂),시암(詩庵),방외도인(方外道人) 등 호가 500개가 넘었다고 한다.스스로를 깨우치는 표상들이 어지간했나 보다.그렇게 많아도 숫자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이름보다 정감이 느껴진다.정취도 있고 격도 달라 보인다.그러나 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점만은 같을 것이다.

010시대엔 한번 갖게 된 번호는 평생 번호가 된다니 세상살이가 더 어려울 것이다.번호가 숙명처럼 붙을 테니 늘 마음 가짐을 성찰하고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그나 저나 아호 하나 만들어 간직하는 정취만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인학

chung@
2003-01-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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