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탑서 백제사리장엄 나올까/해체복원팀 긴장...지진구.진단구도 기대
수정 2002-12-02 00:00
입력 2002-12-02 00:00
백제시대 사리장엄이 훼손되지 않은 채 모습을 드러낸다면,백제금동대향로때의 흥분을 뛰어넘는 대사건이 되리라는 것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미륵사창건이 백제의 국가적 대역사였다면,사리장엄의 규모와 화려함이 어떠할지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국보 제11호 미륵사터 석탑은 백제 무왕(600∼641) 때 만든 것으로 알려져있다.지난해 10월31일 해체를 시작하여 2007년 말 복원작업을 모두 끝낸다는 계획이다.
‘온전한 사리장엄구’를 기대하는 까닭은 무엇보다 사리공을 팠거나,사리함을 넣었을 가능성이 있는 4층 이하는 큰 훼손없이 남아 있기 때문.탑의 규모가 워낙 커 후대에 해체 보수하거나,도굴됐을 가능성도 상당히 낮다.
최근 작업현장에서는 가벼운 흥분이 있었다.4층 지붕받침 중심부에서 상당한 크기로 둥글게 구멍을 뚫어 놓은 부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사리공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힘을 받는 기둥을 세우기 위한 활주받침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그렇다면 ‘진짜’는 언제쯤 작업자들에게 포착될 수 있을까.
감은사터 동·서탑은 삼층 탑신의 석함에서 각각 뛰어난 일괄 장엄유물을쏟아놓았다.황복사터 석탑은 이층 지붕돌에 사리를 안치했다.이처럼 통일신라 시대 초기에는 초층·이층·삼층·지붕돌을 가리지 않고 사리함을 만들었다.
미륵사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백제계 왕궁리석탑에서는 초층 지붕돌위에 사각으로 가공한 두 개의 사리공에서 금판금강경과 금동불입상등 중요한 사리장엄 유물들이 나왔다.
미륵사터 석탑에 사리 안치 시설이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다는 얘기다.그것은,바꿔 말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조사팀이 하루하루 설렘 속에 긴장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리장엄구뿐이 아니다.지진구(地鎭具)와 진단구(鎭壇具)도 나올 수 있다.지진이란 지신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이고,진단은 단을 세운 뒤 발원하는 의식이다.이같은 의식을 치르면서 부처에 공양한 물건이 지진구와 진단구다.
지진·진단구가 나온 예는 부여 군수리사지와 경주 황룡사터의 서금당지·구층목탑 등이 있다.모두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만큼 미륵사 석탑에서도 같은 의식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사리장엄구 못지 않게 중요한 이 유물이 나온다면 그 위치는 탑의 기단부가될 것이다.
미륵사터 석탑의 해체는 내년 12월,기단부 발굴은 2004년 10월 끝난다.미륵사터 석탑이 국민에게 기쁨을 안겨줄지,길면 2년 뒤가 될 수 있지만 희망을갖고 지켜보아도 될 것 같다.
익산 서동철기자 dcsuh@
2002-12-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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