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시장 ‘부익부 빈익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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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2-10-10 00:00
입력 2002-10-10 00:00
부익부,빈익빈.

‘2대8법칙’(상위 20%가 부의 80%를 점유)이 기업 자금시장에도 상륙했다.일부 상장기업들이 넘쳐나는 현금을 주체못해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반면 대다수 중소·벤처 기업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등 자금시장의 불균형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돈을 어디다 굴리나 고민하는 우량기업

강석진 현대오토넷 부사장은 현대건설·전자 등을 거치며 자금담당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그가 요즘 색다른 고민에 빠졌다.과거엔 돈을 어디서 조달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 지금은 800억원에 달하는 여유자금을 어떻게 운영하느냐로 입장이 바뀌었다.“대여섯 군데 증권사에서 자문도 받고,포트폴리오도 짜보고….마치 대접받는 부자고객이 된 기분이다.”고 강부사장은 말한다.올상반기 최대실적을 올린 일부 우량 상장기업들은 구태여 돈을 빌리러 자금시장에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벌어들인 돈도 주체를 못해 금고에 쌓아두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결산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굴리는 단기금융상품만 4조2000억원.삼성전기,삼성 SDI도 현금만 2000억원 이상씩 쌓아두고 있다.

현대차·기아차의 현금관련자산이 지난해 동기대비 400여%씩 늘었으며 포스코,KT,담배공사,전력공사 등 공사계열들도 돈더미위에 올라 앉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사주를 1조원어치나 사들이고 우리사주에 1조원을 배정해도 그 두세배씩 현금이 남아돈다.구태여 자금유치에 나설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말한다.

◆돈을 어디서 끌어오나 목마른 벤처기업

반면 대다수 코스닥 기업들에겐 넘쳐나는 현금 유동성이란 일부 부자기업의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증시 침체로 직접자금 조달도 여의치 않고,거품붕괴 이후 선뜻 돈꿔주겠다고 나서는 금융기관도 없다.3·4분기 코스닥기업들 가운데 71개만이 자금조달에 성공했으며 규모도 3926억원에 불과했다.올들어 갈수록 50∼60%씩 급감하는 추세다.

잇단 자금조달 실패사례만이 흘러넘친다.1200만달러어치 해외 전환사채(CB)발행을 계획했던 한도하이테크는 지난달까지 그 절반인 650만달러어치만 발행을 성사시켰다.넷시큐어테크는 60억원에서 41억원으로,엔에스아이는60억원에서 1억8000만원으로 CB발행물량을 줄여야 했다.

지난 8월 1800만달러 해외신주인수권부사채(BW) 계획을 발표했다가 7일만에 철회한 모디아측은 “금융권 차입금도 한두군데 중단되고 판매대금 수금으로 운용자금을 융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00억규모의 CB모집을 발표했다가 32억원만 발행이 성사된 프로칩스 관계자는 “주가가 뚝 떨어져있는데다 회복도 난망한데 어느 눈먼 투자자가 공모사채 시장에 들어오겠는가.”라고 반문했다.한 게임관련 기업 담당자는 “2000년까지만도 온라인게임 한다고 하면 온갖 창업투자회사에서 펀딩을 해주지 못해 안달이었다.그러나 게임산업이라고 모두 성공하는게 아니란 사실이 검증되면서 자금이 일제히 눈을 돌렸다.”고 전했다.

그는 “일부 엔터테인먼트 업체에 조폭 자금이 지원됐다고 해서 문제가 된 최근의 사건들도 이처럼 시장을 통한 정상적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다보니 생긴 해프닝”이라고 말했다.“코스닥 벤처기업이 회사채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제한 또다른 코스닥 기업 관계자는 “철저한 기술력과 미래가치 조사를 통한 신용대출 관행이 금융권에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2002-10-1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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