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정치브로커
기자
수정 2001-12-15 00:00
입력 2001-12-15 00:00
K씨는 8명쯤이 출마한 서울의 한 선거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2등 당선을 위해서는 대략 2만여표가 필요했다.그의선거사무실에는 온갖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내가 어디의 청년단체 사무장인데 몇 표가 있다’면서 지원을 요청하거나 심지어 ‘친구와 돼지갈비를 먹고 있는데 4표는 확실하다’며 술값 계산을 요구하는 축들도 있었다.K씨는 부지런히 돈을 갖다댔다.투표 전날 선거사무실에서는 예상집계 작업이 있었다.돈을 지원한 경우를 중심으로 최대 예상치와 최소치를 집계한 결과 K씨는 1등 당선이거나 적어도1등과 근접한 2등 당선이었다.
결과는 어땠을까.그의 득표는 200표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치 초년병인 K씨는 이른바 선거브로커들에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선거브로커와는 체급이 다른 한 정치브로커의 행태로 세상이 시끌시끌하다.그가 한때는 국회의원까지 꿈꿨다고 하니 ‘이무기’급 브로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오랜 야당생활을 하다가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브로커로 변신한 그의 탈선 행각은 실세와 친분을 과시하면서 기업 로비스트,사건무마 등으로 등을 치는 권력형 브로커의 한 전형이다.문제는 이런 이무기급 브로커들이 정치판에 성운(星雲)처럼포진해 있다는 것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누구누구를 안다’는 것을 과시하면서 적당하게 인사,공사입찰,인허가,비리 무마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해 한몫을 챙기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력자들 주변에는 ‘독버섯’이 자라나기 마련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요즘 병폐가 자심하게 나타나는 데는 이유가 있을 법하다.‘실세를 통하니까 일이되더라’는 정치·행정문화,검은 돈을 필요로 하는 정치현실이 정치브로커들로 하여금 정치판과 관(官) 주변에 기생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또 정권 교체 후의 온정주의적 인사와 연고주의도 이들에게는 좋은 활동여건이 되고 있다.
지연·학연 등에 유난히 약한 한국적 연고주의,돈을 만들 수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풍토,원칙보다 힘있는사람의 말이 더 우선하는 한국사회의 병리가 브로커들이활개칠 수 있는 발판인 것이다.그러나 우선 드러난 사건만이라도 철저하게 발본하는 것이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강석진 논설위원 sckang@
2001-12-1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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