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길섶에서/ 창경궁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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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10-24 00:00
입력 2001-10-24 00:00
여자는 창경궁에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남자는 “그래…”하면서도 먼저 호주머니속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신경을 썼다.주머니에 손을 넣어 대충 세어보니 동전 몇 개만남아 있었다.혼자 집에 가기에도 빠듯한 돈이다.‘여자를데리고 가면 버스삯과 입장료도 내줘야 하고 음식도 사먹어야 하는데…’남자는 난감했다.

그래서 남자는 핑계를 끌어댔다.“오늘은 컨디션이 좋지않아서…”여자는 모처럼의 제의가 거부된 데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고 남자가 포용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남자는 궁색한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데이트를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입장이었다.어쨌든 그것으로 남자와 여자 관계는 끝이었다.남자는 20년 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그때 호주머니에 수천원의 돈이 있었으면 어떻게 인생이달라졌을까,자문했다.또 적은 돈 때문에 여자에게 자신이속 좁은 남자로 비쳐졌을 것이라며 꺼림칙해했다.돈이 많으면 많이 쓰고 통도 커 보이는 세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비슷하다.

이상일 논설위원
2001-10-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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