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포럼] 경제단체가 운동단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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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1-06-06 00:00
입력 2001-06-06 00:00
다만 ‘재계’로 불리는 경제단체들의 파워는 운동권단체나 노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단체장들이 밥 한끼 먹으면서 회동하고 ‘말씀 한마디’하거나 전경련의 한임원이 ‘서명운동’운운하면 주요 뉴스로 취급된다.그러면정부가 총액출자한도제 등 주요 정책의 틀을 바꿔주고 규제도 풀어준다.세계 어느 나라 경제단체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모이고 국내 어느 조직의 임원이 장관만큼 센 말발을갖고 있을까,다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전경련 산하 한 연구원장 말대로 “이미 재벌공화국인데재벌을 모두 떨어버리고 갈 수는 없다”는 국민적 인식때문일까,재벌 권력이 이미 정부권력을 능가한 것일까,아니면재계의 별 것아닌 행사에 여론이 놀아난 것일까.물론 경제단체들이 새삼 운동역량(?)을 강화하고 과시해야 할 이유는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껄끄러운 정부정책과 노조의 6월 총파업 등은 기업 대응이 필요한 사안일 것이다.여기에다 모경제단체 유관 연구원장이 지적하듯 ‘사회 전체가 좌익으로 가는 것같은’과잉우려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보자.먼저 6월 총파업과 관련한 ‘현시국에 대한 경제계 성명문’이 과연 ‘적격자’들이 발표한 것일까.노사문제 ‘전공’은 원래 한국경영자총협회다.
대기업과 일부 중견·중소기업 등 4,000개 업체를 대표하는경총은 노사문제에 골치아파하는 기업들을 대변해 노조에정면 대항하기 위해 출범했다.반면 전경련은 재벌 소유주들의 친목단체다.무역협회는 삼성물산 등 종합상사나 오퍼상등이 회원이지만 절대다수의 이들 무역업체들은 노사문제가적어 경총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따라서 적어도 전경련과무역협회 등의 두 단체가 노사 관련 성명문에 참여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경제단체들이 월권시비를 일으키는 것은 또 오지랖이 너무 넓은 데 있다.경제단체들은 작년 총선전 재계에부정적인 선거후보자들의 낙선운동을 펼치면서 정치활동에나섰다.작년말에는 ‘현 시국에 대한 경제계 선언’을 통해▲경제회생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정쟁을 중단하며▲노동법 개정을 중단할 것 등을 주장했다.여기에다 최근재벌정책 변경과 규제완화를 요구했으며 노조 총파업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외국인들에게 한국은 경제단체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서구 역사에 있던 극우주의로 치닫는 것이 아닌가라는 인상을 줄 정도이다.
‘노조가 강경대응하니까 우리도…’하는 식의 재계 인식도 문제다.흑자·적자 기업과 국내·외국 투자기업이 혼재된 산업계에서 경총과 노조가 벌이는 전국적인 단위의 임금협상과 대립은 별 의미가 없다. 회사 사정에 따른 임금결정과 연봉제가 우선 고려사항이기 때문이다.먼저 ‘힘있는’재계가 경총을 해체하면 노조는 대항 파트너를 잃어 노사대립이 완화될지 모른다.
사실 경제단체 숫자는 너무 많아 줄이거나 통합해야 한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공업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경총에 ,그리고 그 오너는 전경련에 각각 연회비를 낸다.이런 ‘준조세’를 임금인상에 인색한 기업들이 왜 적극 깎으려 들지않는가.정부가 수십년간 외면해온 복지를 조금 강화하고 재벌을 규제했다고 ‘좌경’운운하지만 우리가 더 경계할 것은 경제단체들의 과잉행동과 이들에 의한 지나친 우익화 경향이다.5공 정권때 한 정부인사가 독일역사를 들어 “사회가 일정 단계에 이르면 금력이 공권력을 짓밟고 올라서려는데 이를 반드시 눌러야 한다”고 주장한 말이 자꾸 생각나는 6월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2001-06-0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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