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가을에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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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0-10-25 00:00
입력 2000-10-25 00:00
며칠 전의 일이다.집무실에 들어와 보니 책상 위의 낯선 편지 한 통이 눈에 띄었다.강원도 원주에 사시는 어떤 분이 보내신 편지로 조금은 서투른 글씨로 수고하신다는 말과 함께 남북간 화해와 교류협력을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이 적혀 있었다.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그 내용의 중요성이나 참신성이 아니다.바쁜 생활 속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정성,그리고 ‘작은 실천’이 나에게 ‘큰 감동’으로 밀려오면서,실천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이러한 소중한 실천들이 분단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고 남북간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징검다리’가되었으며,나아가 통일을 향한 큰 물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가지의 실천이다.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이 추상적인 합의서를 양산하기보다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각종 회담에서 서로가 수용할 수 있고실현 가능한사안을 중심으로 협의·이행해 나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편지를 접으면서 입각 후 업무에 쫓겨 편지 한 통 쓸 여유도 없이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누구에게든 편지를 띄우리라 마음을 먹고 창 밖의 하늘을 보는 순간 문뜩 이산가족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디에 사는지,죽었는지 살아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온 반세기 동안,그리운 가족과 친지,친구들과 헤어진 후 하루도 잊지 않고 북녘 고향을 향해 마음의 편지를 써온 이산가족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왔다.

정부는 이러한 이산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삼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오고있다.8·15를 계기로 온 겨레의 심금을 울린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있었으며,올해 안에 두 차례 더 방문단 추가 상봉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현재 남과 북 각각 100명씩 생사 및 주소확인이 진행중에 있으며,생사와 주소가 확인된 사람부터 서신교환을 실시해 나가기로 북한측과 합의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조치들이 이산가족들의 기대에는흡족하지 않으리라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혹은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 될지도몰라 늘 천근 만근의 무게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이산가족들의 생사 및 주소확인,서신교환,그리고 상봉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북한측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며,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포괄적인 이산가족 문제의 범주에 넣어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고향이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생각나는 계절,이산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희망이 담긴 편지 한 통이 배달되는 그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편지가 머물렀던 자리에서는 지금도 은은한 향기가 묻어 나오고 있다.

朴在圭 통일부장관
2000-10-25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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