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야 햇볕이 든다 지난 며칠동안 한반도에는 참으로 혼돈스런 사태가 발생했다.서해에서는 남북간에 군사상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데,같은 시각에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는 모순된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금강산 관광과 서해 교전은 분단 이후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긴장완화’와 ‘긴장고조’의 예라 할수 있다.금강산 관광이 실현되었을 때 온 국민은 이제 곧 평화와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었다.하지만 이번 서해에서의 교전은 한반도가 여전히 군사상 정전상태의 분쟁지역임을 다시한번확인시켰다.우리가 혼돈을 느끼는 것은 그러한 긴장완화와 긴장고조를 대표하는 사건이 동시에 벌어졌다는 데 있다.말하자면 금강산 관광객들은 전시에 관광을 즐긴 꼴이 아닌가? 이번 사건의 여파로 정치권에서는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논란이 다시 일고있는 듯하다.햇볕정책이란 대북정책의 전략적 기조를 이솝우화에 빗대어비유한 용어이다.이를테면 길 가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면 강풍이 유효하냐 햇볕이유효하냐 하는 논란이다.지난 정권까지의 냉전적 국면에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풍론이 대세였다.국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어 내려는 햇볕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나,이번 서해사건은 햇볕정책을 반대해오던 강풍세력이 자신들의 논리를 정당화할 수 있는 빌미를 또주고 말았다.햇볕정책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관점은 자율성의 관점이다.이솝은 나그네가 옷을 벗도록 하자면 강제가 아닌 자율에 맡기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그 다음 중요한 관점은 지속성의 문제이다.햇볕은 잠시 쪼이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현정부의 햇볕정책이 선뜻 가시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이 시대가 분단의 장마철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본다.작가 윤흥길씨는 그의 소설 ‘장마’에서 민족상잔의 끈끈함과 질퍽거림을 지리한 장마에비유한 바 있거니와,그 장마가 끝나야만 비로소 밝고 따뜻한 햇볕이 지속적으로 든다는 것을 우리는 실생활을 통해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장마가끝나기를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언뜻언뜻 비치는 한줌의 햇볕이야말로 장마를 앞당겨 끝내는 전령이자 동력이니까…….
[임진택 연극연출가 판소리꾼]
1999-06-2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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