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외교 행태(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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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8-01 00:00
입력 1998-08-01 00:00
외교관 맞추방으로 번졌던 한국과 러시아의 외교갈등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외교의 수준은 실망스럽다 못해 한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한마디로 실익은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국가위신만 손상시킨데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을 속이기까지 한 셈이 됐다.

趙成禹 참사관의 추방에 아브람킨 참사관 맞추방,한국측 정보관련 외교관 5명 추가철수상태에서 열린 마닐라 양국 외무장관회담은 1차결렬에 이어 2차 회담에서 이 문제를 더이상 거론하지않고 두나라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됐다. 그러나 2차회담 직후 프리마코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을 한국측이 수용했다고 밝히자 우리측은 “거론된 사실조차 없다”고 부인하다 이틀뒤에야 “가사정리등을 위한 일시적 재입국을 검토키로 했다”고 시인했다.

어떤 이유로든 일단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목하여 추방결정을 내렸던 외교관에 대해 재입국을 허용한다는 것은 주권국가로서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로서 외교관례에도 찾아보기 어렵다. 실리만 따지더라도애당초 맞추방 결정을 하지 않음만도 못하게 돼버렸다. 결과적으로 맞추방 결정이 그이후 일어날 모든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한 신중한 결정이 아니었으며 러시아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아브람킨 참사관의 재입국 논의사실을 숨기고 부인한 것은 더 큰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양국간에 비공개를 약속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우리 외교를 더욱 옹색하게 보이게 할뿐 전혀 설득력이 없다. 상대방 회담대표가 이미 비공개 약속을 깨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측은 거듭 부인하여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국가와 국가에 관계되는 예민하고도 중요한 외교 문제를 다루는 당국자로서의 기본과 신뢰까지 의심받게 돼버렸다. 러시아측이 비공개 약속을 깬 이상 아브람킨의 재입국검토로 러시아측도 우리측 정보관련 외교관의 수를 호의적으로 재조정키로 했다는 사실과 함께 떳떳이 밝히고 국민들의 이해를 구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에서부터 외교당국과 정보당국의 손발이 맞지않았던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정부 내부의 의견차이가 아무런 조율도 되지않은 채 중요한 외교협상에 그대로 노출되었다는 사실이라 하겠다.

이번 러시아와의 협상은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뻔한 마찰을 조기에 수습했다고 만족할 일이 아니라 따지고 손질해야 할 과제를 더 많이 남겼다고 할 수 있겠다.
1998-08-0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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