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씨 소설집 ‘그대,기차 타는 등뒤에 남아’
수정 1998-07-30 00:00
입력 1998-07-30 00:00
80년대 노동문학 주창자들에게는 켕기는 구석이 있었다. ‘무성한 이론’을 무색케 한 ‘창작의 빈곤’. 반론을 못찾고 속앓이 하던 참에 소설가 김한수의 등장은 한줄기 희망이었다. ‘먹물’이 묻지 않은 노동자 소설가에 대한 문예운동 진영의 기대는 남달랐고 김한수의 작업은 그런 바람을 잘 채워주었다.
그러나 정작 김한수의 자리는 요즘 더 커보인다. 날티나는 시대를 리얼리즘의 뚝심으로 버티는 모습은 유달리 미덥다. 줄곧 소외된 변두리 인생에 애정을 쏟아온 작가가 새 소설집 ‘그대,기차 타는 등뒤에 남아’(문학동네 간)를 내놓았다.
노동자 작가도 세월의 흐름 속에 시장 상가의 식당주인으로 변했고,이번 소설집의 주요 화자로 등장한다. 신분은 상승(?)했으나 눈높이는 한결같다. 상인들의 육두문자를 빌려서 시끌벅적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부분 잊혀져 가지만,잊어서는 안되는 삶을 그리고 있다.
시장 주변 먹자골목을 배경으로 한 ‘빈 수레 끄는 언덕’과 ‘숨쉬는 화석’은 오늘의 작가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가진게 없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미화하지 않고 건강한 것은 건강한 대로,추한 것은 추한 그대로 발가벗기고 있다.
이런 오늘이 있기까지 삶의 편린들이 드러나는 작품이 ‘스테인드 글라스의 눈’이다. “옳다고 여기며 살아왔던 시간들이 송두리째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지고 어리둥절한 백지 상태”(‘숨쉬는 화석’)에 빠진 화자의 방황을 잘 그리고 있다. 한 사진작가가 자극적인 향락문화에 자기를 맡기고 떠도는 행위등 욕망으로 부푼 세상을 세밀하게 묘사,진보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세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표제작 ‘그대,기차타는 등뒤에 남아’는 비뚤어진 사회를 고발한 단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이 단지 ‘공돌이’라는 이유로 좌절된 주인공. 부조리한 사회인식과 맞서는 방편으로,마지막 사랑을 나눈 애인을 죽이는 장면은 전율로 다가온다. 세상이 나아졌다지만 그것은 가진 자의 소리이고 ‘공돌이’나 ‘농투성이’에게는 꿈같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섬뜩하게 제시하고 있다. 외곬으로 리얼리즘의 거푸집을 만들어 온 김한수의 글에는 고집만이 아닌 체험의 힘이 실려있다. 세상이 균형잡혀야 한다고 믿는 이들의 손길이 그의 소설을 향하는 이유다.<李鍾壽 기자>
1998-07-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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