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에 햇볕을(金三雄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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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8-07-07 00:00
입력 1998-07-07 00:00
여전히 8·15는 우리에게 억압과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새로운 출발로 다가온다. 그런 뜻에서 국민정부 출범의 의미를 함께하지 못한 양심수들에게 뒤늦게나마 사면 복권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양심수’를 거론하면 용공으로 몰렸다. 정권교체로 이런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사회 일각에는 양심수의 사면 복권을 색깔론과 연계하려는 세력이 존재한다.
불행한 우리 정치사는 좌우 이념대결과 함께 독재와 반독재의 정치대립이 오랫동안 지속돼왔다. 양심수는 바로 이런 대결과 대립 과정에서 생긴 ‘아웃사이더’들이다.
앰네스티가 정의한대로 “신념 종교 성별에 상관없이 비폭력 수단으로 자신의 사상과 의사를 표현하다 실정법에 의해 탄압받는”사람이 양심수다. 우리의 특수환경과 관련,국내 인권단체들은 “정의 평화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다 구속된” 사람이라 말한다.
군사독재시절 金대통령도 ‘양심수’였고 새정부에는 상당수 양심수 출신이 요직에 앉았다. 따라서 정부는 누구보다 양심수와 그 가족의 아픔을 헤아릴 처지다.
○우리 체제 우월성으로 포용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 관계자는 한국에 한명의 양심수도 없다고 한다. 어느 시대 관리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구정권 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지난 2월 앰네스티는 한국내 양심수 명단 100여명을 대통령직인수위에 전달한 바 있고, 민가협 등에서는 지난 3월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때 전체 양심수 478명 가운데 15%에 불과한 74명만 석방되었다고 국민정부에 불만을 토로했다. 인권단체들의 조사로는 현재 437명의 양심수가 수감중이란 주장이다.
양심수 석방을 둘러싸고 시각차이가 있을 수 있다. 국체를 부정하는 공산주의자나 대남파괴 활동을 벌인 간첩까지 양심수로 부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여전히 분단과 무력대치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지금 햇볕론을 통해 대북포용정책을 펴고 있다. 북쪽을 포용하면서 남쪽의 반체제를 배제한다면 그건 모순이다. 해외 반체제 망명객들도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는가.
전향제 폐지와 함께 우리 체제에서 수용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여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 이것은 金대통령 햇볕론의 정신이기도 할 것이다. 문제는 전향제 폐지와 함께 ‘준법서약’을 둘러싼 불필요한 공방으로 햇볕정책을 방해하려는 세력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
일부 수구세력은 반공을 독점하는 체하면서, 필요하면 적과도 내통하고 개혁세력을 색깔론으로 매도하려 든다. 정부의 전향제 폐지 조처도 이들에게는 다시없는 색깔론의 대상이다.
○과격한 요구 일 그르쳐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엄격한 ‘준법서약’을 통해 우리 체제에 흡수하고 순수한 양심수는 과감한 사면 복권조치로 해방의 기쁨을 안겨줘야 한다. 준법서약제는 ‘서약’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서 정부나 양심수측이 너무 극단적 고집을 부려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총련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현재 가장 많은 구속자가 바로 한총련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대학생인 한총련 수감자들은 이번 기회에 가정과 학원으로 복귀돼야 한다. 다만 탈냉전의 물결에 휩쓸려버린 사회주의의 허상, 굶주림의 동토로 변해버린 주체왕국의 실상을 꿰뚫는 인식의 전환이 따라야 한다.
젊은이들이 지난 우리 역사가 남긴 모순구조와 현실의 부조리로 자칫 극단의 모험주의 관념과 허상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허망과 절망만이 남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정부와 기성세대의 포용력이 필요하다.
다시는 이땅에 양심수가 존재하지 않도록 화해 정의 평화 인권 같은 보편가치가 더욱 신장돼야 한다. 개혁은 바로 이런 가치구현을 위해 필요하다.<주필 kimsu@seoul.co.kr>
1998-07-0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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