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십계명(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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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12-14 00:00
입력 1997-12-14 00:00
아쿠타가와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개천용지개)에 의하면‘제3자는 자살자의 자존심과 고뇌를 헤아릴수 없기 때문에 자살자의 심리를 실감있게 묘사할 수 없다’고 말한다.누구나 야망이라는 목적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릴때는 자살같은건 생각할 겨를이 없게 된다.촌각을 아껴 바쁘게 돌아가는 이들이 ‘눈코 뜰새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그래서 자살은 센티멘털리즘의 사치나 비겁자의 도피행위로 정의된다.

주로 자살충동자를 상대로 상담을 벌이는 ‘생명의 전화’에 따르면 우리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하에 들어간 이달들어 경제문제와 관련된 상담건수가 무려 60%이상 증가했다는 발표다.상담내용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실직을 했다든가 주식투자실패,또는 수십년간 이끌어온 사업이 급속도로 악화된 경우 등이고 이로인해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린 남편들이 과음과 폭행을 일삼는 바람에 아내들이 ‘죽고싶다’고 호소하는 예가 대부분이다.남의 절박한 사정은 모른채 공자님 말씀같은 틀에 박힌 말로 ‘자살은 나쁘다’고 한다면 한가하고 역겹게 들릴지 모른다.그러나 지금은 어느 한두사람만이 아닌 전국민이 함께하는 고통이며 괴로움이다.‘죽고싶은 마음이 있으면 죽기살기로 살라’고 했듯이 모두가 함께 하는 고통일때 슬픔도 가난도 반으로 줄어든다.

일본의 주간지 ‘아에라’가 발표한 ‘동반자를 잃은 슬픔극복 10계명’에 보면 ‘동반자’를 ‘사업실패’나 ‘실직’으로 바꾸었을때 위로될만한 구절이 몇개 눈에 띈다.먼저 ‘상실이 아니라 해방이라고 여기자’는 말,‘돈’에서 벗어나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발가벗고 뛰자는 의미다.그리고 ‘슬픔을 사회화하라’는 말.미국에서 총에 맞아 숨진 한 젊은이의 부모는 ‘총기규제 서명운동’을 펼침으로써 죽음의 의미를 사회속에 살려 나가면서 슬픔을 이겨냈다.자살은 ‘인생패배’를 자인한 것이지만 ‘인생을 이해’하는 쪽으로 절망을 이겨내면 폭풍우 후엔 반드시 찬란한 태양이 비치게 마련이다.새로운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자세로 세찬 비바람이 지나가기를 서로 가려주고 달래며 기다려보자.<이세기 사빈논설위원>
1997-12-1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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