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유감” 일 태도에 분노/북송 일인처 고향방문1진 이일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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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11-14 00:00
입력 1997-11-14 00:00
“가족·동창생·친척들이 따뜻하게 맞아줘 즐겁게 보냈습니다.인생에 남는 추억이 될 것입니다” “좀 더 빨리 왔었으면 좋았을텐데…”
일본인 처 고향방문단 제1진은 13일 이일을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차례차례 이같이 감격을 털어놓았다.
첫 북송선이 일본항을 떠난지 38년만에 처음으로 고향땅을 밟았던 일본인 처 고향방문단 1진의 기자회견에서는 또 양측 적십자사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는 한편 ‘김정일 장군님이 계시고…’ 운운하는 발언도 나왔다.
입국시 기자회견처럼 ‘공식화된 회견’이 되는듯 싶었던 기자회견은 그러나 곧 감격과 함께 이들의 분노가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가 일변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김례숙(일본명 미공개)씨는 “일본에 가면 정말 기쁠줄 알았다.하지만 여기에 오니 일본 이름을 공개하지 말도록 한다거나 만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조선인과 결혼한 것이 무슨 죄나 되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기쁜 마음보다 분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분노를 토해냈다.발언 도중 분하다는 부분은 일본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우리말로 ‘분하다’고 말했다.이어 정산숙(일본명 다카기 쓰네코·59)씨도 “유감스럽다.민족 차별감정이 남아 있어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고 거들었다.기자회견에 임한 ‘일본인’ 4명이 모두 일본의 반응에 대해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고향방문을 앞두고 일본측은 친척들이 만날 것인지 만나지 않을 것인지를 조사한다고 시간을 끌었고 이름을 감추기도 했다.일본에 사는 친척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또 제발로 걸어간 자들을 왜 국민세금을 들여 고향을 방문하도록 하느냐는 말들도 속삭여졌다.
일본인 처들이 짧은 기간 머물었지만 그 밑에는 서로 말하지 않았던 ‘차별’의 감정이 어른거리고 있음을 숨길수 없었다.
‘일본인’들의 일본에 대한 분노에 대해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앞으로 2차·3차로 이어지는 고향방문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까.감격·감사·분노의 감정이 뒤엉킨 기자회견장을 뒤로 하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도쿄=강석진 특파원>
1997-11-1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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