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만수대예술단원 신영희씨가 말하는 최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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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8-28 00:00
입력 1997-08-28 00:00
◎김정일 총애… 주말파티 매번 불려가/최씨 은퇴후 장 대사 외국근무 허용

“해외에서 생활하는 북한사람들 대부분이 김정일체제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해외주재 고위층 인사들의 망명이 잇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에 망명한 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의 부인 최해옥씨와 80∼88년 만수대예술단에서 같이 활동했던 신영희씨(36)는 27일 하오 서울 덕수궁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씨 망명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신씨는 95년 12월 북한 최대의 무역회사인 대성총국 유럽지사장이던 남편 최세웅씨(36),아들,딸과 함께 귀순했다.

신씨는 최씨에 대해 “예술가로서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었을뿐 아니라 김정일의 총애를 등에 업고 오만하게 행동하는 많은 배우들과 달리 매우 겸손하고 소박해 동료배우들의 호감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또 “70년대말부터 가극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 꽃분이역을 맡아온 최씨는 1백여명의 만수대예술단원 가운데 단 15명만이 초대되는 김정일의 주말파티에 거의 매번 불려갈 정도로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고 말했다.특히 89년 최씨가 꽃분이 역에서 물러나 음악교수를 맡게 되자 이 사실을 안 김정일이 다시 주인공으로 복귀시켰을 정도였다는 것.

이때문에 장대사는 줄곧 북한 외교부 본부에서만 근무하다가 최씨가 91,92년쯤 완전히 무대에서 물러난 뒤에야 외국주재 대사로 나올수 있었다고 신씨는 전했다.

신씨는 “황장엽 비서에 이은 장대사 일행의 망명으로 해외 주재원에 대한 북한 당국의 감시와 사상통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뿌리깊이 박힌 체제에 대한 반감 때문에 앞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망명을 결행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김태균 기자>
1997-08-2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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