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그대로 둘것인가/한총련 폭력살인 특단의 조치 필요
수정 1997-06-05 00:00
입력 1997-06-05 00:00
한총련 학생들의 살인 폭력에 국민들이 경악했다.그리고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무모하고 야만적인 학생들은 물론, 이를 막지 못한 공권력도 함께 비난했다.
무고한 시민 이석씨(23)를 학생들이 경찰 정보원으로 몰아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4일 시민들은 학생들의 유혈 폭력 행위에 치를 떨며 더 이상 이들을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화와 통일을 명분으로 내걸면서 이율배반적으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폭력혁명을 외치는 한총련이 더이상 이땅에 발을 못붙이도록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며칠동안 서울 도심을 마비상태에 빠뜨리고 애꿎은 진압전경의 목숨을 앗아간데 이어 급기야 살인까지 저지를 때까지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지적했다.
이같은 참사는 그동안 한총련이 유사한 폭력을 휘두른 전례로 미루어 일찌기 예견돼 왔다.
이씨의 사망 직전인 지난달 28일 하오 8시쯤 한양대 안을 배회하던 한모군(16·서울 광진구 자양동)이 대학생 3명에게 학교를 염탐한다는 이유로 붙잡혀 4시간동안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당했다. 이어 지난 1일 상오 10시30분쯤에는 양모씨(22·인천시 남구 주안 1동)가 같은 이유로 대학생들에게 붙잡혀 구타당한뒤 12시간만에 풀려났다.
운동권 학생들에 의한 시민 구타사망 사건은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이번이 세번째다.
89년 10월 동양공업전문대생 설인종군(당시 20·공업화학 2년)이 연세대에서 프락치로 지목돼 학생회관의 「만화사랑」 동아리방으로 끌려가 연세대·고려대생들에게 맞아 숨졌다.
94년 8월에는 고려대생들이 리어카 행상 전귀희씨(당시 38세)를 같은 이유로 마구 때려 사망케 했다.
지난해 7월30일에는 김형근씨(당시 26세·도배공)가 건국대 학생회관 3층 총학생회실에서 학생들의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창문밖 10여m 아래로 뛰어내려 양팔과 양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90년 4월21일에도 문영규씨(당시 32·노동·대구시 중동1가)가 경북대 총학생회실에서 기관원으로 몰려 손발이 묶인채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을 당한뒤풀려났고 같은해 5월9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경상대 건물 4층 화장실에서 역시 경찰 프락치로 오인돼 학생들에게 붙잡혔던 김태수씨(당시 29)가 15m 아래로 투신,척추에 금이 가고 다리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김태균·조현석 기자>
1997-06-0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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