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교의 회생/강석진 도쿄 특파원(오늘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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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7-02-02 00:00
입력 1997-02-02 00:00
지난달 31일 하오 4시30분.일본 관청가인 가즈미가세키에 위치한 공안심사위원회 회의실에 홋타 가쓰지(굴전승이)위원장이 들어섰다.

95년 3월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5천여명을 죽거나 다치게 만든 옴진리교단(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파괴활동 방지법」을 적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결론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홋타위원장은 파괴활동방지법을 적용하기 위한 요건으로서 정치목적,일련의 사건의 단체성은 인정하면서도 장래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평가했다.따라서 옴진리교단에 파괴활동방지법은 적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찬반 양론에도 불구하고 이 결정은 「이성의 승리」라고 크게 환영을 받고 있다.

파괴활동방지법은 지난 52년 야당등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정된 법률이다.정치적 목적으로 집단적 폭력을 휘두르고 일반 형사 법률 적용만으로는 지속적으로 파괴활동을 벌일 우려가 있는 단체를 제거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그러나 이 법은 제정 당시부터 제국주의 시대 치안유지법이나 마찬가지로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런 이유로 한번도 적용되지 않던 이 법이 옴진리교 사건이 터지면서부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공안조사청은 95년 12월 공안심사위에 이 법 적용을 청구했다.심사위는 지난 13개월동안 신중하게 검토,적용하지 않기로 결론을 내렸다.옴진리교의 핵심요원들이 그동안 거의 검거됐고 종교법인체로서의 기능도 해산명령을 받았으므로 위험이 상당히 제거됐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만으로 단체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파괴활동방지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따라서 옴진리교는 종교법인체가 아닌 단순한 한 「단체」로서 살아남게 됐다.

일본언론들은 공안심사위가 치안이냐 인권이냐라는 질문앞에서 민주적인 안전판으로서 역할했다고 평가한다.특히 예전에 옴진리교단의 마쓰모토 사린사건에 범인으로 의심받아 부인이 충격으로 식물인간이 돼버린 고노 요시유키씨나 옴진리교단에 의해 변호사 아들 일가가 살해된 사카모토 사치요씨(여)가 『분위기에 쏠려서는 안된다』면서 『기각됐다고 교단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용하지 않은 것은 잘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은 인상적이었다.
1997-02-0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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