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보고서(외언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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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9-14 00:00
입력 1996-09-14 00:00
미국 로스앤젤레스지역 한인 전화번호부는 사용된 한글활자체가 크고 종이가 좀 두껍긴 하지만 서울의 전화번호부 만큼이나 두툼하다.특히 번호부 앞쪽 여러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각종 단체,특히 각급학교 동창회 전화번호가 눈길을 끈다.

최근 한·미 언론인세미나 참석길에 잠시 돌아본 LA의 코리아타운은 4년전 흑인폭동의 악몽을 거의 벗어난 모습이었다.올림픽가 일대 여러 블럭에 자리잡은 코리아타운이 폭동 이전보다 오히려 인근지역으로 더 확장돼가고 있는 모습을 한글간판의 분포로 언뜻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을 잠시 돌아본 방문객의 눈에 이상스레 비쳐진 것은 인근의 차이나타운이나 리틀도쿄와는 달리 코리아타운은 단지 한인들만의 장소일 뿐 다른 미국인들과는 전혀 무관한 곳이라는 점이었다.

식당,식료품 등 각종 상점,한약방,병원,미장원,자동차 정비공장 등 다양한 업소들이 한결같이 커다란 한글간판만 내걸고 있었다.미국에서 미국사람 아닌 한인들만을 상대로 영업을 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셈이었다.이국적 명소를 즐기려는 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차이나타운과는 전혀 다른 이런 배타적 분위기가 한·흑 갈등의 한 요인이었던 것으로 지적됐었지만 쉽게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인들이 똘똘 뭉쳐 미국사회에서 정치·경제적 발언권을 높이고 사는 것도 아닌 것 같다.출신지역,학연 등 한국에서의 「끈질긴 유대」를 그대로 가져와 분열하고 무제한경쟁하고 또 헐뜯으며 한데 몰려서 살아가고 있다는게 이민 온지 오랜 교민들의 공통된 자탄이었다.

이런 한인사회의 실정을 꿰뚫어 본 듯한 보고서가 LA시 산하 「인간관계위원회」에서 나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보고서는 이 지역에 한인교회가 7백여개나 되며 각종 동호회,동창회,지역모임 등 갖가지 한인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지만 대만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서로 협력할 줄 모르고 분열이 심해 경제력이나 인구 만큼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발언권을 갖지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황병선 논설위원>
1996-09-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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