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전상국씨 창작집「사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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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8-08 00:00
입력 1996-08-08 00:00
중견작가 전상국씨가 모처럼 새 창작집 「사이코」(세계사)를 펴냈다.작가 김유정의 삶을 소설화한 93년작 장편 「유정의 사랑」도 있었지만 창작집으론 89년 「지빠귀 둥지 속의 뻐꾸기」이후 7년만이다.
분단의 악령을 진혼하던 이 중후한 작가는 대부분 90년대에 씌어진 이번 작품들에서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을 맹공하는 쪽으로 옮겨왔다.시대변화에 맞춰 소재는 「현대화」됐지만 참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캐묻는 실존적 관심의 불꽃은 여전히 맹렬하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급류에 휘말리지 않는 뿌리깊은 바위처럼 미덥고 반갑다.
작품집은 광기에 휩쓸린 인물을 그린 중편 네편이 연작으로 묶여있다.작가는 사회병리를 온몸으로 앓는 광인들을 그들과 달리 아무렇지도 않은듯 적응해 살아가는 정상인들에 대비시켜 병든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이코시대」에서 파행을 일삼다 골칫덩어리로 찍힌 땡삐는 가족들 손에 사이코로 몰려 기도원에 유폐된다.하지만 목소리만 클뿐 무력했던 땡삐에 비해 교활한 적응력을 갖춘 만재는 지역의 유지로 성공한다.
「거울의 알리바이」는 교통위반차량 색출에 총대를 맨 노상관이란 인물을 내세운다.4번과 66번 국도에 매복,무수한 차선위반 차량을 사진찍어 고발하는 것을 업으로 해온 그는 「법이란 지켜져야 한다」는 신념에 고지식하지만 고발당한 이들은 치를 떨며 그를 강박증 환자로 몰아세운다.
한편 어린 시절 살기오른 눈빛에 한끼라도 고기를 못먹으면 환장하는 육탐을 부리다 외지로 쫓겨나다시피 떠난 삼촌이 지자제 선거가 닥친 고향에 홀연히 나타나 막판뒤집기로 시의원이 되는 거짓말같은 과정을 그린 최근작 「개미거미들의 화음」은 복마전 정치판에 대한 풍자다.「시인의 겨울」은 도시의 한 빈민촌에 구멍가게를 낸 시인의 눈으로 일상의 구석마다 스며든 부패를 비춰보고 있다.국민학교 선생,문인,아이들,이웃 할 것없이 탐욕에 젖어 아무도 믿을 수 없게된 이 동네에서 시인은 군대간 이복동생이 백두산까지 횡단하겠다는 포부를 털어놨다가 정신병자로 몰려 의병제대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개미…」에서 삼촌 출마의 전과정을 지켜보는 소설가,「거울…」의 고발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르포작가 등 이번 작품집에는 거의 매편 작가가 등장하고 있다.이를 통해 『글쓰기는 야비하고 던적스러운 광기의 소산』이라며 사회고발 이전에 철저한 자아비판부터 수행한 전씨는 『반성을 통과하며 한매듭 짓고 자유로워졌으니 작가로서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라고 앞으로의 왕성한 창작을 다짐했다.<손정숙 기자>
1996-08-0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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