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투쟁」이란 말 한번 희한하다(박갑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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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6-26 00:00
입력 1996-06-26 00:00
몇해전부턴가 우리사회에서는 「준법투쟁」이라는 말이 쓰여온다.법지키는 일을 투쟁방법으로 삼는다는 뜻인데 좀 어리뜩하다.투쟁이다 하면 얼핏 비합법이 연상되는 사회현실에 비춰볼때 그말이 풍기는 냄새는 희한하잖은가.

가령 서울지하철공사노조 준법투쟁을 보자.일찍 타결되어 다행이지만 정차시간을 평소의 10초에서 30초로,차량정비시간도 30분에서 2∼3시간으로 늘린다는 내용이었다.그럴때 보통 45∼50분 걸리는 상계∼사당 운행시간이 1시간15분∼1시간40분쯤 걸린다.

그 결과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말할것 없고 시민의 불편도 커진다.이제 타결이 되어 「정상」으로 돌아갔으니 날마다 규정을 어기는 운행을 한다는 뜻이다.

심각한건 준법투쟁이란 행위의 선거운 실체다.『당신들,정 그렇게 나오면 우린 법을 지켜버리겠어』 하는 「엄포」에 공기업 사용자가 주눅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눈물 찔끔거리게 하는 우스개가 아니고 무엇인가.당연하고도 남을 「준법」이 공기업종사자의 의사관철용 「무기」로 되다니.법 안지키기가 일상화해버린 사회의 두동진 서글픔이 아닐수 없다.

비유컨대 이렇다.선생님과 의견충돌 생긴 열등학생이 『선생님,꼭 그러시깁니까.전 그러면 우등생 돼버릴 겁니다』면서 고개를 빳빳이 세운다.그 서슬에 선생님이 수꿀해진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말썽꾸러기 아들이 『아버지가 그렇게 나오시면 저는 앞으로 삼강오륜을 지켜버릴테니 그리 아시지요』 하는데 『그건 안돼』 하는 아버지와 다를 것은 또 뭔가.



『에비야!』.어린애 겁주려면서 하는 소리다.법이나 규정이 선반위에 올려진채 어떤 필요에 따라 그같은 에비로 돼서는 안된다.그것은 에비가 아니라 일상속에서 살아 숨쉬어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지킬수 있게 만들어져야 하고 만들어진 다음에는 지켜나가야 한다.만들고서 선반위에 올려놨기에 지켜야할 사람들이 도리어 에비로 삼고있지 않은가.준법을 투쟁의 에비로 삼는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 것인지 어쩐지.

「준법투쟁」이라는 말은 질서지키며 법대로 바르고 맑게 사는 사람이 뒤처지면서 외로워야하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만 같다.선거법이란 것도 그렇다.그것 지키는 사람을 고단한 패배자로 만들지나 않았던 건지 모를 일이다.〈칼럼니스트〉
1996-06-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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