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3차공판쟁점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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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6-03-26 00:00
입력 1996-03-26 00:00
12·12 사건과 관련,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13명의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25일 3차 공판으로 마무리됐다.공판에 쏠린 국민적 관심에 비춰 1단계 고비를 지난 셈이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비롯한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예상대로 검찰과 피고인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때문에 공판일정도 재판부의 당초 예정보다 2주가 늦어졌다.
세차례의 공판을 통해 12·12 사건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쾌하게 규명됐다.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사전 계획과 집결경위,정총장 연행,신군부의 병력동원,육본의 대응,최규하 대통령의 재가과정,신군부의 무력진압,군 인사의 논공행상 등이다.
검찰의 논지는 이렇다.『12·12 사건은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신군부측 장성들이 경복궁의 30경비단에 모이면서 구체화됐다.정총장의 연행사실을 알면서도 육본의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진압군을 무력으로 제압했다.최대통령에게 사후에 강압적으로 재가를 받았다.변명의 여지 없는 군사 반란』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도 12·12 사건이 10여일 전에 치밀히 계획된 쿠데타였음이 최근 공개됐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공판에서 역사적 사실의 실체규명에 대체로 성공,주도권을 잡은 판세이다.
그러나 쟁점에 대한 피고인과 변호인의 반격 강도는 의외로 거셌다.두차례에 걸친 변호인단의 기습적인 의견서 배포,전씨 진술에 맞춘 피고인들의 「입맞추기」가 단적인 예이다.
이들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치밀하고 의도된 쿠데타」라는 점은 한결 같이 부인했다.
정총장의 연행은 합수부의 정당한 수사과정이고,병력동원은 육본의 진압에 맞선 것이라고 주장했다.최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합법적이라고 우겼다.
이양우 변호사는 ▲정총장연행의 합법성 ▲경복궁 모임의 순수성 ▲진압군의 선제발포 등 3가지 쟁점을 부각시킨 점을 성공작으로 꼽았다. 물론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다음달 1일에 5·17사건,즉 80년 비상계염의 전국확대 등에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을 시작으로 5·17 및 5·18 사건의 공판이 순차적으로 열린다.
재판부가 『효율적 재판을 위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5·18사건이 사실 규명 측면에서 12·12사건보다 훨씬 난해한 점 등은 재판일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과 증인신문 일정 등을 감안하면 1심 선고는 잘해야 8월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박선화 기자>
1996-03-2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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