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체험 진솔하게 노래/윤재철씨 시집「생은 아름다울지라도」출간
수정 1996-01-11 00:00
입력 1996-01-11 00:00
자신의 체험을 치장도 과장도 않고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그 시시콜콜한 삶의 세목을 구체적 서정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시인의 안목이 돋보인다.
마음순한 시인은 한곳에 깃들고픈 정착욕망과 무작정 길 떠나려는 충동 사이에서 딱 부러지게 선택을 못한 채 주저한다.상충되는 두가지 욕망의 부딪침은 「집」연작에서 예각으로 드러난다.<돌아가야 하는 곳이 집일까/돌아와야 하는 곳이 집일까/…/아니면 저 허공/목숨 걸고 오가는 나그네 길이 집일까>(「집·노랑 할미새」중)
그 배경에는 실제 집이고 직장이고 다 벗어나 계룡산 갑사의 불당에서 밥을 얻어먹던 시인의 지난 체험이 깔려있다.반떠돌이 홀가분한 심사여서일까?시인의 귀엔 <마누라가 아이둘을 놔두고/어느 사내와 눈이 맞아 도망쳐버린> 바보같은 한 사내의 한숨이며 <담배 한갑이두 천원인디 뭐가 겁이 나/거시기두 달린 사람이>라는 시장통 아주머니의 능청스런 호객도 정겹다.
그런가하면 한편엔 그리움,사랑 등을 노래한 그야말로 「시적」인 시들도 실려있다.시인은 어디에서나 부딪히는 쉽고도 흔한 말들에서 서정성이 여울져 반짝이는 시편을 끌어낸다.<몸에 가까운 말은 쉽다/오래 두고 살아 있는 말은 참으로 쉽다/…/그래서 무청은 저렇게 푸른가>(「무밭에 앉아」중)
하지만 그의 아름다운 시는 단지 혼자만의 감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 텐데/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아름답다면/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자신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생리를 보며/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생은 아름다울지라도/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생은 아름다울지라도」전문)
구질구질한 삶의 밑바닥에서 거대 역사의 현장을 관통하는 법칙까지 붙들어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그의 아름다운 시어는 지니고 있다.<손정숙기자>
1996-01-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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