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제「열려라,방」/김경욱「아크로폴리스」/운동권비판 신세대소설출간
기자
수정 1995-02-02 00:00
입력 1995-02-02 00:00
이념이 무너진 시대,신세대의 눈에 비친 운동권은 어떤 모습일까.최근 출간된 두 장편소설 「열려라,방」(중앙일보사 펴냄)과 「아크로폴리스」(세계사 펴냄)는 이같은 질문에 의미 있는 답변을 해주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69년생인 신진 작가 우승제씨가 지은 「열려라,방」은 섹스행위와 혁명을 자주 교차시키면서 운동권을 적극 상업화한 소설.또 71년생 김경욱씨의 「아크로폴리스」는 대학생활을 자전적으로 그리면서 운동권에 대한 냉소와 반대논리를 거침없이 개진하고 있다.
따라서 20대 중반인 두 신진작가의 소설은 이제까지의 문단 경향과 확연히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공산권몰락이후 비록 무뎌지긴 했지만,문단에서는 운동권 이념을 존중해 반대논리 언급을 금기로 여겨왔기 때문이다.이들의 작품은 아울러 운동권에 대한 신세대 시각이 어떤지를 보여줘 운동권을 다룰 작품들의 변화를 시사해준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열려라,방」은공단지대 허름한 단칸방에 기거하는 주인공 윤민식이 혁명과 관능 사이에서 방황하는 내용을 우화적으로 그렸다.윤은 방음이 되지 않는 방 때문에 여자친구와의 성관계에서 자주 실패,곤혹해 한다.옆방에는 노동자들과 함께 혁명을 꿈꾸다 결국 변절한 예언가가 산다.여자친구의 종용과 예언가의 꾐에 빠져 윤은 혁명반대세력을 옹호하는 글을 써주고 그 대가로 정사를 치르기에 안전한 방을 제공받는다.그러나 윤은 곧 혁명세력과 그 반대세력 양쪽으로부터 공격받으면서 「자기만의 방」을 소유하는데 실패한다는 줄거리이다.
이 소설은 「한 개인이 이 사회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가 이토록 힘든가」하는 실존적 물음을 던져주기도 하지만 이는 표피적인 것에 불과한 듯하다.필요이상으로 정사장면을 등장시킨데다 무거운 주제를 따라잡기에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의식이 빈약하다.90년대 들어 많은 민중현장소설들이 연애소설의 경향을 띠지만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경우는 없었다.그러나 이 소설은 가벼움을 무기로 삼은 작가가 혁명과 운동을 노골적으로 희화화함으로써 운동권을 다룬 어느 소설보다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만드는데는 일단 성공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는 작가가 조직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책과 영화 당구 등에 심취했던 대학에서의 문학청년 시절을 다소 감상적으로 회고한 작품.이야기 곳곳에 운동권 선후배들이 끼어드는데 작가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반대를 서슴지 않는다.국민학교 때 광주에서 5·18을 겪었다는 작가는 죄의식을 갖는 기존작가와는 달리 운동권의 교조성·순수성의 상실 등을 꾸짖는 신세대의 당당함을 보여준다.이 젊은 작가에게는 조산 중에 죽은 어머니를 뒤따라 자살한 여자친구 세현,현실을 떠돌며 섬을 꿈꾸다 군에 입대한 친구 형섭 등의 기억이 보다 실존적인 아픔으로 다가서고 있는 듯하다.<백종국기자>
1995-02-02 1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