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GNP13배·교역3.5배 격차/1945∼현재 한·일국력비교
기자
수정 1995-01-01 00:00
입력 1995-01-01 00:00
1945년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현대사 발전의 일대 전환점이 된 해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이라는 민족사의 암흑기에서 벗어나 자주·민족 국가로서 재출발이 시작된 때이다.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분단과 동족상잔의 시련을 딛고 동북아의 변방 국가에서 세계 무대의 당당한 한 주역으로 등장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일본도 태평양전쟁 패배 이후 천황 중심의 군국주의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개편되면서 재도약,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각종 통계지표를 중심으로 광복 전후 한·일 양국의 국력은 어느 정도 차이가 났고,반세기가 지난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해 본다.
▷인구 및 취업 구조해방◁
원년인 45년 남한의 인구는 1천6백87만3천명으로 당시 일본 인구 7천1백99만명의 4분의 1도 채 안 됐다.
반세기 가까이 지난 93년에는 우리 인구는 2.6배가 증가한 4천4백5만명으로 불어난 반면 일본은 1.7배 증가(1억2천4백76만명)하는 데 그쳐 격차가 3배 정도로 좁혀졌다.
산업활동의 중추를 이루는 15∼64세의 경제활동인구 비중은 44년 당시 우리는 52.9%로 일본(58.1%)보다 낮았지만 93년에는 70.3%로 일본(69.8%)을 앞질렀다.
취업구조를 보면 44년 우리나라는 농림어업이 76.5%,광공업 6.5%,서비스업 17%로 전형적인 농업국가였다.일본도 48년에는 광공업 20%,서비스업 30%이고 절반은 여전히 농림어업에 종사했다.
양국 모두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업구조가 크게 변했다.93년 우리나라는 농림어업 14.7%,광공업 24.4%,서비스업 60.9%로 변모했고 일본도 각각 5.9%,23.8%,70.3%로 바뀌었다.
▷경제규모 및 산업 활동◁
리나라의 국민총생산(GNP)은 처음으로 GNP 통계를 시작한 53년 14억달러에서 93년에는 3천2백87달러로 2백30배 이상 커졌다.1인 당 GNP도 67달러에서 7천4백66달러로 1백10배가 됐다.
일본의 GNP는 55년 2백33억달러에서 93년 4조2천50억달러로 1백80배가,1인 당 GNP는 2백61달러에서 3만4천1백달러로 1백30배가 증가했다.현재 한일간의 격차는 GNP는 13배 정도,1인당 GNP는 4.5배이다.
48년 우리의수출은 1천4백40만달러로 46년 일본(1억3백만달러)의 7분의 1,수입은 17분의 1 수준이었다.그러나 93년에는 수출이 4분의 1,수입은 3분의 1 수준으로 그 격차가 좁아졌다.
철도 화물의 수송능력은 46년 일본이 30배 정도 높았으나 93년에는 1.4배로,여객의 수송능력도 65배에서 11배로 줄었다.자동차 등록대수도 48년 9분의 1 수준에서 93년에는 7분의 1로 좁아졌지만 승용차 수는 일본이 2.7배에서 8.5배로 늘어났다.
해방 전후 5배 정도 차이가 나던 발전량은 6배 정도로 차이가 더 벌어졌다.쌀 생산량은 52년 일본이 4.2배 많았지만 93년에는 2배로 차이가 많이 줄었다.
일본 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가전제품의 생산량은 93년에는 3분의 2 수준까지 육박했다.컬러TV는 우리가 1천5백만3천여대로 일본 보다 4천6백대가 많았다.자동차 생산대수는 1백98만1천대로 일본(1천5백97만6천대)의 8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다.
사회·보건 해방 이듬해인 46년 우리나라의 전화 가입자수는 3만6천명이고 일본은 이 보다 3백배 정도였다.93년에는 3·5배로 차이가 급격히 줄었다.
의료시설의 경우 병원은 해방 직전에 2백개가 채 안됐으나 92년에는 2만8천개로 급증했다.그래도 91년의 일본과 비교하면 5분의 1 수준이다.의사수도 일본이 4배 이상 많아 의료시설과 인력은 우리나라가 일본 보다 여전히 크게 뒤져 있다.<송태섭기자>
1995-01-01 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