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바둑」 승부사 서봉수9단/1천승 금자탑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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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1994-11-30 00:00
입력 1994-11-30 00:00
◎어제 왕위전서 장수영9단에 불계승/국내처음… 일·중 이어 세계3번째/70년 입문… 일 유학 안거친국내파/맞수 조훈현9단에 가려 만년2위 설움도

1천승 고지를 눈앞에 두고 4차례나 패퇴를 거듭해 많은 바둑팬들의 애간장을 태웠던 「집념의 승부사」 서봉수 9단(41)이 29일 드디어 생애 1천승을 이뤘다.

이날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열린 대국에서 서9단은 장수영 9단(42)을 맞아 한국바둑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1천승 달성이 이렇게 어려운줄 몰랐습니다.힘겹게 얻은 승리여서 더욱 기쁘고 이를 계기로 내용있는 바둑을 펼쳐 보이겠습니다』

「집념의 승부사」는 천신만고끝에 1천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날 승리로 통산 1천5백31국(연평균 63국)을 두어 1천승5백28패3무 승률65%의 기록을 냈다.1천승 위업은 국내 최초이자 일본의 「면도날」 사카타 에이오 9단(75)의 통산 1천1백11승,대만의 「이중허리」 임해봉9단(52)의 1천7승에 이은 세계 3번째.

장수영 9단과의 제29기 왕위전 본선리그가 열린 한국기원본선대국실.이날 대국장은 반드시 승리해 1천승을 올리겠다는 서9단과 그의 「제물」이 될 수 없다는 장9단의 비장한 각오로 처음부터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대국 중반 중앙의 대마를 몰면서 착실히 실리를 챙겨 서9단의 우세쪽으로 바둑이 기울자 그의 얼굴은 점차 붉게 상기됐고 장9단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서9단이 1백83수만에 흑불계승.서9단은 허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1천승을 앞두고 연패를 거듭하다보니 자신감을 잃었다.또 체력이 많이 떨어져 기사생활중 최악의 컨디션이었다.앞으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좋은 기보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9단의 이날 승리는 40만달러(3억2천여만원)의 우승상금과 함께 명예와 자존심을 한꺼번에 되찾아 줬던 지난해 응창기배 세계바둑대회 우승보다 더 값진것.응창기배 우승이 세계 바둑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순간의 의미」가 있다면 1천승 기록은 그의 오랜 바둑인생 역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게다가 응창기배 우승이후올 내내 부진의 늪에서 허덕여 『큰 상금을 차지하더니 승부사가 승부욕을 상실했다』는 비아냥거림도 감수해야 했던 그로서는 이번 대기록 달성이 새로운 탄생의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서9단은 순국산 「된장 바둑」으로 통한다.매서운 눈매와 깡마른 체구에서 「승부사」「표범」등의 별명이 붙여졌다.이 별명들은 그의 바둑인생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학 2학년때 친구를 따라 기원에서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우기 시작,17살때인 70년 프로에 입문하더니 2년뒤 당시 최강 조남철 8단을 물리치고 명인에 오르면서 한국바둑계에 혜성처럼 등장,각종 기전에서 「순국산」바둑으로 성가를 떨쳤다.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동갑내기 친구자 숙명의 라이벌인 조훈현 9단과 「조­서대결」시대를 열면서 만년 2인자의 설움을 감수해야 했다.기전 우승은 18회인 반면 준우승은 무려 51회.우승문턱에서 많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이창호·유창혁이 등장,「4인방」체제로 바둑구도가 바뀌면서 그는 4인방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소리를내며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고 있다.

「된장 바둑」을 아끼는 바둑팬들은 1천승 달성을 계기로 그가 「진정한 강자」로 거듭 나기를 기대하고 있다.53년 대전 출생,서울 동양중·배문고졸.<김민수기자>
1994-11-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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