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국가개조” 국정방향 전환/김 대통령 「시드니 구상」의 뜻
기자
수정 1994-11-18 00:00
입력 1994-11-18 00:00
김영삼 대통령이 17일 시드니에서 밝힌 「세계화장기구상」은 다음 세대를 위한 세계경영전략을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세계화·국제화라는 단어에서 묻어나는대로 이 구상의 공간적 개념은 「한국」이 아니라 세계다.우리시대를 위한 발상이 아니라 차세대를 위한 발상이라는 점에서 목표시간대는 2010년일 수도 있고,그 이후일 수도 있다.이같이 새로운 공간개념·미래시간대를 기준으로 한국의 인적·물적인 수요와 공급전략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시드니선언」인 「세계화장기구상」의 요체다.
그것은 한국의 선진화전략보다는 시간대나 목표가 좀더 길고 높아 한국을 세계중심국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또한 단순한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온 국제경쟁력강화작업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물질적 번영 못지않게 정신과 인성이 중시되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점에서는 김대통령이 취임후 줄곧 주장해온 신문화창조구상과 맥이 통한다.
장기구상은 김대통령이 발상만 했고 구체적인 전략의 수립은 내각에 넘겨졌다.한이헌 경제수석은 이에 대해 『현재의 단계는 김대통령이 내각에 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한마디 던진 단계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따라서 이날 김대통령이 밝힌 세계화장기구상은 몇개의 과제와 방향만 설정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은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다.
김대통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아시아 3개국 순방에서 세계화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장기구상착수의 배경을 밝혔다.김대통령은 일련의 회의와 순방에서 한국의 위상과 잠재력을 재발견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특히 APEC 정상회의에서 신흥공업국의 무역자유화 목표연도를 선진국과 같은 2010년에서 개발도상국연대인 2020년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우리국력에 대한 자신감과 국력증대의 필요성을 동시에 절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대통령은 이런 느낌을 정리해 한경제수석에게 전했고 한수석이 이를 체계화,다시 김대통령에 의해 발표가 됐다.
세계화구상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이미 국내의 대기업들이 세계경영전략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는 참이어서 정부가 대기업들 뒤를 뒤늦게 따라가는 형국이기도 하다.
특히 대통령자문기구인 21세기위원회가 6년전부터 국가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해온 것에 비추어 새로운 상징조작을 통한 국면전환용이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을 소지도 있다.청와대쪽에서는 이를 의식하는 듯 이 구상이 현세대의 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차세대의 꿈과 희망을 위한 것이며,국가전체의 경영면에서 발상전환을 전제로 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우리자신보다는 차세대를 위한 대책을 세우자는 것』이라면서 『그 속에는 우리세대가 희생되더라도 나라를 차세대를 위한 장기전략구도 아래서 운영하겠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고 풀이했다.주돈식 대변인은 『시드니선언이 새로운 국정운영의 기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모든 국정이 세계화구상 아래서 재점검,조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청와대의 설명은 세계화구상이 경제개발5개년계획 같은 경영프로그램으로서 만이 아니라 70년대의 새마을운동 같은 국민개조·국가개조를 위한 총체적 개혁프로그램의 성격을 지닐 것임을 의미한다.세계화구상은 집권중반기이후의 새로운 통치철학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단기적으로는 답보를 거듭하고 있는 국내정치상황에의 타개카드로 활용될 것이다.기존의 21세기위원회나 교육개혁위원회의 계획들,제도개혁등은 세계화전략의 깃발아래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인 정책들은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기 쉬운 경제부문과 교육부문등에 우선적으로 역점이 두어질 전망이다.이와 관련,청와대당국자는 『경제부문에서는 경쟁제한적인 규제나 법률등이 우선 검토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예를 들면 경제계의 첨예한 현안인 삼성그룹의 승용차시장진출이나 현대의 신제철소설립문제등이 세계화전략이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조명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또한 시장개방정책도 이개념에 따라 보다 가속화될 여지가 많다.
교육부문에서는 세계화의 요체인 외국어교육의 강화나 「세계화마인드 심기」등이 주창될 가능성이 높다.교육시장개방,국내학생들의 해외유학 문호개방도 훨씬 빨리 진행될 것이다.<김영만기자>
◎김 대통령 기자간담 요지/“이번 순방서 명분·실리 모두 얻었다”/APEC회의 조정역… 문민정부 국력 실감
호주를 방문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17일 상오 숙소인 시드니의 리전트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아·태지역 3개국 순방및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성과등에 대해 설명했다.
김대통령의 모두발언및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요지를 간추려본다.
▲김대통령=아·태지역은 세계 GNP(국민총생산)의 57%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은 우리의 네번째 교역대상입니다.교역량이 1년에 25%이상 늘어나고 있어 1∼2년안에 세번째로 올라설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순방의 의미가 대단히 큽니다.특히 우리의 국제적 역할과 실리가 확보됐습니다.
필리핀에서는 「필리핀2000」이라는 야심찬 경제개혁계획에 우리기업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정상회담을 통해마련했다고 봅니다.인도네시아에서도 6차 5개년경제계획에 우리가 참여하게 됐으며 지금까지의 참여폭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가 될 것입니다.호주에서는 산업·시장진출을 놓고 키팅 총리와 깊이 있게 논의할 계획입니다.
역사상 한·미·일 3국 정상이 회동한 일은 없었습니다.이번 회동을 계기로 정례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 활용할 생각입니다.
APEC정상회의에서는 문민정부의 역량을 실감했습니다.각국 정상이 나에게 조정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해 이를 기꺼이 수락해 2020년 무역자유화선언의 도출을 선도했습니다.
경제면에서도 실리를 얻었다고 자부합니다.2010년까지 무역자유화를 해야 하는 대상에서 우리나라를 신흥공업국에서 제외시키는 과정은 매우 힘들었습니다.회의 전날밤부터 개별정상들과 접촉,11명으로부터 지지발언을 얻어냈으며 회의 의장인 수하르토 대통령에게도 수정의 필요성을 설득했습니다.우리가 농업부문에서 취약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킨 것이 주효했습니다.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조정역할을 하는 위치에 설수 있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국민에게 감사하고 문민정부의 강점을 확인했습니다.
지난 14일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정책은 어떻게 정리됐습니까.
▲14일 무라야마 일본총리와 조찬을 나누며 3국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고 3국 정상이 의견을 모아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대북정책과 관련해 논의된 내용에 대해서는 발표된 것 이상은 밝히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세계화」문제와 연관지어 국회 장기공전사태를 맞고 있는 국내정치의 질적 향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내정치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APEC정상회의,3국순방등 역사적인 일을 하는 입장에서 굳이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귀국해서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오는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 선진국그룹에 속해 2010년까지 자유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요.
▲APEC정상회의에서 신흥공업국을 선진국그룹에서 삭제하도록 함으로써 우리는 명분과 실리를 다 얻었다고 봅니다.다자간 국제회의에서는 모든 것이 강대국의 뜻대로 되는 게 상례인데 이번 회의에서는 유일하게 내 요구가 받아들여져 수정이 됨으로써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선진강대국의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OECD에 가입해도) 우리는 농업인구가 전체의 13%나 되는등 취약한 부분이 많아 그런 면에서도 여유를 가질 수 있습니다.<시드니=김영만특파원>
1994-11-18 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